숏츠 영상에 '성실함은 가난이다', '개근 거지' 이런 제목이 떴다. 사회적 실험처럼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에 대한 영상들 중 하나였고, 물론 실험카메라이기 때문에 영상의 출연자들은 일종의 연극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실험 카메라인지 모른 채 성실함은 가난이다라는 제목 하나에 끌려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현재의 내 성실함이 가난에서 비롯된다는 나에 대한 말인 것만 같아서. 어쨌든 영상에는 한 아이가 나왔고, 모르는 어른들에게 다가가 자신이 개근 거지라고 말하고 자신에게 이런 일을 시킨 친구에게 대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들이 나왔다. 이 부탁을 받은 어른들은 기꺼이 아이의 친구에게 그것은 언어폭력이며 친구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실험카메라는 하지 말라고도 했고, 영상의 어른들이 이 상황이 꾸며낸 건 줄 알게 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쁠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글쎄, 내가 영상의 어른이었다면 오히려 현상황이 아니라 안심했을 것 같다. 개근 거지란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 해서 학교에 개근하는 것을 말한다. 몇년 전, 경기도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휴거(휴먼시아 거지)'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도 있다. 아마 개근거지도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이기에 이런 영상이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지금처럼 해외 여행을 하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아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저 그렇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나는 시골에서 자랐기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구멍난 양말은 꿰매서 신기도 했고, 어떤 애들은 구멍난 바지의 무릎 부분을 천으로 덧대어서 입고 다니기도 했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 위해 분투하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당시의 아이들은 훨씬 더 부유하게 사는 지금의 아이들보다 꿈이 컸다. 어쩌면 가난했기에 꿈이라도 크게 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난이 만연했기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 사이에서 가난을 놀리는 일을 별로 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어른들이 가난을 더 차별했다. 아니면 지금은 내가 어른이라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의 어른들에 대해 더 좁게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 못난 어른들은 예나 지금에나 있을 것이므로. 어찌되었든 경험한 것은 경험한 것이므로, 어린 시절 내가 경험한 어른들은 더 가난한 집의 친구와 내놓고 같이 놀지 말라고도 했고,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할 것 같은 교사들은 더 가난한 아이들을 더 미워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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