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외로웠지

그 외로움이 나의 외로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by 요술램프 예미

심술이 붙어 있던 어느 늙은 여자가 있었다.

유난히 뚱뚱하고 사나운 인상의 늙은 여자였다.

늘 우리들을 향해 옆 반의 공주님에 대한 찬양을 끊을 줄 모르던...


몇 살 쯤 되었을까... 지금 기억으로는 50대 후반정도였던 것 같다.


그녀가 늘 찬양하던 그 공주님은 육성회장의 딸이었는데, 그 하나만으로도 찬양받기에 마땅한 자격이 있었다.

"그 옆반 공주님은 어쩌는 줄 아느냐, 이 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아~"

그녀는 늘 이렇게 우리에게 소리를 쳐대며 그 공주만을 보고 싶어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옆 반의 공주가 동화 속에서나, 혹은 TV 속에서나 살고 있는 공주쯤으로 생각했다.

현재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 늙은 할망구가 떠들어대는 소리인 줄로만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내내 나는 실존하지 않는 것 같은 그 실존의 인물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폭력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일 뿐이다.


그저 멀리 어딘가에서만 살고 있던 그 공주님이 내 삶에 들어온 건 3학년 때였던가, 4학년때였던가...

그래, 그 애는 뉘 집 귀한 막내따님이었다.

공주님에 걸맞게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를 한 사람씩 지목하여 일주일 간격으로 혹은 한 달 간격으로 왕따를 시키던 아이였다. 왕따의 이유도 그냥 제 마음이었다. 거기에 무슨 합당하고 그럴 듯한 이유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누구 하나 그에 반항하지 못하고 그 왕따의 순서가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어떤 아이는 그 애 엄마가 공주마마가 입었던 가죽치마를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봤다고 그 날로부터 외로워지기 시작했다. 감히, 평민은 공주마마가 입은 치마 따위에는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 공주는 자기 친척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이었음에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땐 아이들을 다 포섭해 그 애를 왕따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 아이에게 말이라도 거는 아이는 다음 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직도 그 아이의 눈물을 비롯해 많은 아이들의 눈물을 기억한다.



마치 누군가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아이들처럼 그 애는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에 꼼짝 못하고 있었다. 바보들같이 힘을 합쳐서 그 애 하나 무찌르면 그만인 것을 힘을 합칠 줄도 그것이 부당하다고 말도 못하고 그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빨리 다음 차례가 등장했으면 하는 소망만을 가질 뿐이었다. 나라고 예외는 될 수 없었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오고야 말았다. 아마 머리모양 정도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그 차례가 되어보니, 왜 다른 친구들이 울기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다. 나는 그 공주마마에게 대들었고, 심지어 때려 눕혔다. 물론 나도 맞았다.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전해 들은 말로는 그 공주마마의 엄마인 왕비마마가 "너한테 대드는 인간은 다 때려줘라~ 어디서 감히 제까짓게 대들고 있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시나무엔 가시가 열릴 뿐이다


그 이후에 공주마마 옆에서 스스로 행동대장의 역할을 하였던 아이의 차례까지 이르렀다. 마치 권투시합처럼 3대 1로 돌아가면서 그 애와 싸우는 것이었다. 학교 뒷산에서 반 아이들을 다 모아놓고... 그 장면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경기를 가장한 죽방의 실체' 정도로 제목을 붙여나보자. 그 이후에 결과가 어찌되었는지 전해들은 바도 없고 묻지도 않았다. 전해 듣지 않아도 묻지 않아도 뻔한 결과였을 테니...


그 아이의 폭력은 6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멈췄다. 이제 아이들 머리가 굵어지면서 더 이상 그런 폭력을 허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이란 것을 그 아이도 배우게 되었다고 애써 생각하고 싶다.


드디어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공주마마로서 군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 때까지 꽤 공부를 잘 해서 나는 마음 속으로 그 애 하나만 이기면 된다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더 이상 그 애의 성적은 상위권에 있지 않았다. 외모도 더 이상 공주마마가 아니었다. 조금은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라이벌의 힘이 막강해야 나도 그 만한 힘과 열정이 생길 수 있나 보다. 아마 계속 그 애 성적이 상위권이었다면 내 학력이 서울대로 바뀌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난 걔가 대통령이라도 될 줄 알았어


어떤 친구가 어른이 되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공주마마는 어디서 네일샾인지를 한다고 전해 주었다. 공주마마로 누군가로부터 네일케어나 받아야 할텐데 참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가시였던 그 아이는 지금 가시나무가 되어 그 딸을 또 가시로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 상상도 해 보았다.


우리는 한 번쯤 힘든 외로움의 시간을 겪었다. 제발 나의 외로움이 아니라 다른 친구의 외로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어른이 된 지금 생각하면 왜 다들 그렇게 바보같기만 했을까 헛웃음이 나오지만,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누군가 내게 얼토당토않은 외로움을 주려고 할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누군가가 부당한 외로움을 당하고 있을 때 그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잡아주는 용기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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