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 사람 이상하다고 했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또라이였어~
몇 년 전, MBTI 교육을 받고 와서 왠지 그게 너무 잘 맞는 것 같고 재미있기도 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또 저 사람은 어떤 유형일까 지레 점쳐보고 싶어지기도 했던 적이 있었다. 전날의 교육이 무척 재미있기도 하여 동료들과 MBTI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동료가 다른 동료의 MBTI유형을 듣더니 위와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향해 '역시 또라이'라고 했던 그 동료는 MBTI교육을 단 한차례도 받지 않았고, 그냥 MBTI관련 서적만 읽었을 뿐이었다. 개인적으로 강의 한번 듣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만 공부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교육을 그는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해 그래도 좀 알려면 성격유형검사를 비롯한 심리검사를 최소한 여덟 가지를 해 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최소한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알기엔 부족할 수도 있다. 특히, MBTI는 융의 이론 중 극히 일부만을 가져온 것이라 과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검사도구이다. 그래서 MBTI와 관련한 논문은 논문지에 실리지도 못하고 논문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도 못한다. 그냥 혈액형처럼 즐거움을 위해서 혹은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 정도로 쓰면 된다.
사람들은 어떤 누군가를 개념화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틀 안에 놓아두고 그 사람을 규정짓기라도 해야 전혀 알 수 없는 우주적인 존재에 대해 마음과 정신의 일부를 조금이라도 알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상대에 대한 모호함을 알고 싶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함을 조금이라도 떨쳐버리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심리학 도구도 그 사람을 정확히 말 해 줄 수 없다. MBTI초급과 중급과정까지 들을 땐 MBTI가 사람을 정확히 꽤뚫어 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빠진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과정까지 죽 듣다보면 사람은 정확히 규정해서도 섣불리 판단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알고 있는 어떤 선생님은 자신이 가진 J성향이 너무 싫어서 P성향이 나올 때까지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아무리 검사를 하고 또 해도 P성향이 나오지 않자 급기야 실의에 빠졌고, 마지막으로 했던 검사에서 드디어 P가 J보다 1점이 더 나와서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이 경우엔 P와 J의 점수차가 크지 않아 정확히 P라고 말할 수 없음에도 심지어 그걸 본인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데 만족하고 있었다. MBTI를 받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피검사자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원하는 성향이 나올지 충분히 예측가능한 질문들과 보기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이 검사를 하다보면 내가 원하는 혹은 그렇게 되어야한다는 이상형에 체크를 하고 있는지 진정한 내 모습에 체크를 하고 있는지 자신도 잘 모른 채 답지를 고를 때도 있다.
이상하게도 전세계적으로 유독 한국에서 MBTI에 대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접근하기 쉬워서이기도 하고, 꽤나 흥미롭기도 해서일 것이다.
혈액형별 성격에 대해 믿고 이야기하는 나라는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다는데, 두 나라의 차이점은 일본은 상대편을 알고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상대의 혈액형을 물어보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 사람의 단점을 파악하기 위해, '그럴 줄 알았어'의 용도로 상대의 혈액형을 묻는 데 차이점이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심리검사 역시 상대를 이해하고 그 앞에서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을 알기 위해 쓰여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약점을 캐내기 위해서나 그 사람을 비난하는 용도로 쓰이지 말아야 하며, 하나의 심리검사 결과로 그 사람 전체를 파악했다고 자신하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기도 하다.
모 여성센터에서 사람을 모집할 때 지원자의 MBTI유형을 항상 쓰라고 하는 것을 본다. 그 단체는 그걸 알아서 무엇에 쓰려고 할까. 자신들이 선호하는 혹은 절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을 걸러내기 위해 MBTI유형을 쓰라고 했을까, 아니면 미리 그 사람의 유형을 알고 난 후 그 사람을 배려하기 위함이 목적이었을까. 배려하기 위함이 목적이었다면 면접에서 물어보거나 입사한 후에 물어봐도 충분한 것이었으므로, 누군가를 걸러내기 위한 목적이었을거라 생각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책을 딱 한 권 읽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 책이 자신의 전부이므로 그 사람은 무척이나 편협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다. MBTI를 공부한 사람은 그게 전부인줄 알고, 애니어그램을 공부한 사람은 그게 또 전부인줄 알기도 한다. 그림 한장 그리라고 해놓고 그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사람에겐 또 그게 절대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심리학 관련 서적이 넘쳐나서 너도나도 심리학자들인 것 같다. 특히, 아들러 심리학 서적이 계속해서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라와 있고,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한 그 저자는 또다시 아들러 심리학 관련한 책을 출판했고 또 사람들은 아들러 심리학을 읽는다. 아들러는 무수히 많은 심리학자들 중 한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심리학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을 종종 보았다. 심지어 자신이 읽은 혹은 들었던 것들로 일장연설을 펼쳐놓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명색이 심리학 전공자인데 비전공자가 책 한 권 읽고선 나에게 훈수를 두는 것을 들어야했던 적이 있었다.
단 한 권의 책이 자신을 편협한 인간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단 하나의 심리도구에 의한 검사결과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까워지지 못하게 하는 '편견'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전문가에 의하지 않은, 그 앞에서 전문가로서의 윤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그 검사도구를 다루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누군가를 쉽게 규정 짓고 그를 쉽게 결론내리고 그럼으로 인해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어떤 분이 우리 아이가 노는 것을 보고 나에게 걱정스럽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분은 유치부 교사를 오래 하였고 심리상담사 교육을 받기도 했던 분이었다.
"아이가 사랑을 많이 못 받은 것 같아요~ 사랑을 많이 해 주세요~"
순간, 우리 아이는 그 분 앞에서 부모로부터 사랑을 많이 못 받은 문제 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교회서 부모교육을 받는 부모들을 대신해 한 시간동안 우리 아이를 비롯한 다른 아이들을 그 시간에 봐주신건데 그 분은 우리 아이를 그렇게 결론내렸다. 겨우 다섯 살에 다른 아이들이 노는 걸 부서뜨리고 방해했다고 사랑 못 받은 아이의 틀에 우리 아이를 가둬버렸다. 여자아이들의 고무줄을 끊고 도망갔던 무수히 많은 사내아이들을 문제 있게 바라보는 사람은 없듯이 완성된 무언가를 부서뜨리고 다른 애들 노는 걸 방해한 건 자신의 욕구에 극히 충실했던 사내아이의 행동에서 비롯된 아주 사소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심리상담사 교육을 사설기관에서 받았던 그 분은 스스로 이미 전문가였다. 어떤 전문가도 그 사람과 있었던 한 시간의 시간으로 그 사람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실제와 실천이 더 중요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지식과 이론에 기반하여야 한다. 지식과 이론의 편협함에서 오는 무수히 많은 오류들이 존재하고, 또 그 오류들은 누구보다 본인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당신이 당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도 마찬가지이겠지요.
가끔, 너는 어떤 MBTI 유형이니까 그 직업에 잘 맞고, 어떤 유형이니까 그 직업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을 때가 있습니다. 직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욱 더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말이 제일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교육계에는 어떤 특정 MBTI 유형을 가진 교사들이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원래 그렇지 않았던 교사들도 교육계에 있다 보면 그렇게 변하기도 합니다. 하나의 직업군에 하나의 유형만 모여있다는 것은 어쩌면 조직원들에게 무척 불행한 일입니다. 교사들의 대다수가 하나의 유형에 집중되어 있는 학교라면 학생들에게 얼마나 끔찍할지 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그리고 직업과 연결시킬 때는 즉, 나에게 어떤 직업이 잘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MBTI보다는 스트롱을 비롯한 더 좋은 검사도구도 많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