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ue.
저는 어릴 때부터 얼른 스무 살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스무 살은 '대학생'이었고,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아니 대학생이 되면 모두 부자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은 멋지게 자신을 꾸미면서, 방학 땐 취미로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린 날 제 착각의 밑바탕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한다’라는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누구나 대학에 가는 줄 알았고,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의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70%에 육박합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한국에는 20대 초반의 나이면 ‘대학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당연하게 깔려있습니다. “어느 대학 다니니?”, “전공이 뭐니?”라는 질문은 실례이기보다 의례입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몇 년 사이 페이스북에서는 ‘출신학교와 학번을 밝히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의 자기소개가 유행과 의무처럼 번져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문구 역시도 그들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만은 증명해주는 꼴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다니지 않는 청년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대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곤한 질문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왜 학교를 그만뒀어?” “무슨 일이야?”라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반면 대학생들은 “왜 대학을 다니니?”라는 질문에 대답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기 때문이죠.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삶을 ‘정상’이라는 틀 안에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사회에서 다름은 별남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르다’라는 표현엔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시키는 기운이 남아있는 듯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이 ‘별나다’라고 여겨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을 대표하는 단어가 ‘대학생’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흔히들 서로의 생활이 달라지면 할 말이 없어지고 어색한 사이가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생활이 서로 달라서 즐거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로 즐거움을 시작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