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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Sep 22. 2020

끊임없이 나를 직면하는 과정

자격 없는 국어국문학과 학생의 투정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국문과 진학을 희망했다. 아마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인이셨던 담임 선생님의 영향일 것이다. 매주 시화 그리기를 했었는데, 그게 참 재밌었다. 그때 종합장이 아직도 있다. 제일 기억에 남고 또 귀여운 시화 그리기는 귤 향기와 관련된 시였는데, 방 안에 귤 향기가 가득 찼다는 내용을 9살 오은진은 방안에 거대한 귤 하나가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그렸더랬다.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해야 할지, 적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책'과 관련된 기억은 초등학교 때가 가장 강렬하다. 2학년 때는 책을 많이 읽는 학생으로 뽑혀 독서 반장을 했고, 4학년 때는 독서골든벨에서 상도 타봤다. 그때까지 받았던 유일한 상장이었다. 내 독서사는 8살부터 11살까지가 강렬하다. 00구보다 학구열이 강했던 강북구로 이사 오기 전까지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학력, 학벌과 관련해서 강북구와 강남구 많이 비교들 하지만 강북의 학구열도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는 책이 아니라 참고서와 친했다.


4년 간의 독서경력은 꽤나 긴 효력을 발휘했다. 최소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끗발'이 남아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책과 더 멀어졌다. '국어시간'보다는 '사회탐구'시간이 더 재미있었다. 특히 경제 수업에 심취해서 오경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수학, 경제, 문법과 같은 딱딱 떨어지는 명쾌한 학문들을 좋아했다. 물론 이젠 명쾌한 학문 따위는 없다는 걸 아는 현실감각은 생겼다.


그래도 문법에 관한 관심은 여전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희망했다. 자소서도 문법과 관련된 내용들을 썼다. 그 내용을 갖고 뽑힌 게 여전히 미스터리이긴 하지만. 그런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고 앉아있느냐, 왜 한국문학과 출판문화라는 수업을 듣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이 활자들을 쏟아내느냐. 그건 2017년으로 돌아가야 대답할 수 있다.


고등학교 때, 국어국문학과 진학을 위한 스펙으로 관심 있지도 않은 '문예창작반' 동아리에 들어갔다. 예전부터 책은 좋아해서 중학교 때 글쓰기 영재 시험에 여러 번 도전하곤 했는데 번번이 떨어졌다. 백일장에서 상을 타본 적도 없다. 상상력이라는 게 도무지 없는 인간이었다. 힘들었던 2년간의 동아리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강평회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강평회에서 내가 말을 잘하는 게 느껴졌다. 창체 시간 중에서 가장 생기가 돌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때 그 경험으로 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현대 비평의 이해'라는 수업을 신청해버린 것이다. 교수님은 낭만적이셨다. 첫 과제가 작가 강연회를 갔다가 감상문을 쓰는 것이었다. 2017년 현재 문학의 의미가 무엇일지 써보라고 하셨다. 각종 인터넷 서점 이벤트란을 매일 뒤졌다. 그래서 듣게 된 게 교보 인문학 석강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보이지 않은 길로 걷는 문학'이라는 주제의 강연이었다. 듣기만 해도 과제에 쓸 내용이 왕왕 많을 것 같지 않은가? 그래서 바로 신청했다.


나는 고등학교 무렵부터 문학을 싫어했다. 국어 모의고사에서 현대시 문제는 항상 골칫거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가'라는 건 현실과는 동떨어진 채 글이나 써대는, 상상력에 매몰된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의 강연을 듣는데, 마음이 너무 따뜻해지는 거다. 그동안의 오해가 싹 풀리는 순간이었다.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과제다. 2010년대 이후의 한국 소설을 가지고 비평문을 한 편 작성하라는 거였다. 누굴 하지 고민하다가 얇은 두께의 책을 발견했다. 아슬아슬하게 2010년도에 출판된 책이었다. 황정은 작가의 '百의 그림자' 다. 그때 쓴 10장 남짓의 비평문은 내가 우울할 때 아직도 읽는 글이다. 그 글을 읽으며 아 그래, 살아야지.라고 다짐한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내 취미는 적독이다. 쌓을 積에, 살필 督이다. 책을 쌓아두고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책을 쌓아두는 걸 좋아한다. 어느 책을 살지 고르는 기준도 단순하다. 제목이 맘에 들거나, 표지가 예뻐야 한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책을 완전 많이 읽는 줄 안다. 절대 아니다. 나 진짜 책 안 읽는다.


적독이 취미라고 하면 또 오해받는 게 있다. 그 오해 역시 내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알라딘 중고서점을 사랑한다. 최근에는 동네서점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난처하긴 하다.


서론이 이제야 끝났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방금 막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울뻔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이 수업의 수강생들이 모두 책벌레라고 생각하신다. 그런 뉘앙스가 담긴 말을 들을 때면 어깨가 움츠러든다. 내가 출판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순전히 나 때문인데, 책은 안 읽으면서 책을 사는 건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해서였다.


요즘 수업시간에는 대한민국의 독서사에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오늘 읽은 논문에서 중요한 내용은 사회적 계급과 문화적 계급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나는 각종 서평단에 지원한다. 공짜로 책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도서관을 애용한다. 졸업하면 뭐 먹고살지 보다, 졸업하면 이런 책들 다 어디서 볼 수 있을지를 더 걱정할 때도 있다.


책을 살 돈은 있어도 책을 읽을 시간은 없다. 책을 살 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책을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 책은 애증 같은 것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문학에 기대하는 바가 워낙 크다 보니 감정적 소모도 크다. 한편으론 동시에,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사고 읽을 기회를 얻기 위해 궁리한다. 그 기회의 차단이 오히려 나를 분노하고 읽고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그런가. '책'을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나한텐 어렵고 아프다. 끊임없이 내 현재를 마주한다. 위로받는 동시에 책날에 베이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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