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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Oct 12. 2020

그리운 J에게

14.05.23

예전만큼 널 생각하지 않는다. 이젠 이따금씩 너를 생각한다. 너를 잊는 사람들이 미웠는데, 나 역시도 너를 잊었다.


해사한 너의 웃음을 기억한다. 새하얀 너의 운동화를  기억한다. 내 기억 속 너는 항상 새하얗고 단단하고 올곧다. 그런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짐작하지 못한 내가 한스럽다.


네가 읽었을 그 책을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사람들은 네가 그 책을 따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단순하게 너의 죽음을 설명지었다. 내가 그 책을 볼 수 있는 날이 올까? 그 책을 보면 그때의 너를 조금이라도 더 알까 싶다. 그래서 그 책을 읽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네가 얼마나 아팠는지 확인하면 무너져 버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책을 읽지 못한다.


어제는 한 책을 읽었다. 많은 이의 죽음을 겪고도 자연사한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그는 자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애도에서 다음 애도의 웅덩이로 텀벙텀벙 걸으면서도 다 놓아버리지 않은 것은, 내가 먼저 죽은 사람들의 기록관이어서였다. 남은 사람이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을 테니까.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39쪽.


내가 왜 살아있는지 기억해냈다. 너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이 너를 잊어도 나는 끝까지 널 기억할 거라고. 이를 악 물었다. 독기를 품었다.


널 다 잊어버린 듯 보이는 세상이 미웠다. 널 지워버린 세상이 미웠다. 그래서 지난 5월엔 너를 말하고 다녔다. 너를 말하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나만 너를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널 기억하고 있었다. 너도,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


너를 떠올릴 때면 분노와 서글픔 뿐이었다. 하지만 이젠 너를 그리며 너의 새하얗던 운동화와 너의 해사한 웃음과 너의 올곧음과 강직함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 나와 함께 웃던 너를 기억한다. 나와 함께 미래를 끄적거리던 너를 기억한다. 너의 아픔과 밝음을 이젠 동시에 떠올리려 한다.


네가 보고 싶다. 가끔 사무치게 그립고 눈물이 핑 돈다. 너를 다시 만나면 널 꼭 안아줄 거다. 너를 발견하자마자 달려갈 거다.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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