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mbrella Jan 14. 2021

드라마가 좋은데 싫은 이유

를 핑계로 쓰는 일기

드라마를 좋아하는 건 중학교 때 시작됐다. 애초에 영화보다 드라마를 더 좋아하기도 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지금은 드라마에 대한 호감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좋아했던 이유는 길기 때문이었다. 오래 볼 수 있고 질질 끌 수 있으니까. 질척거리는 걸 좋아하는 내겐 영화의 러닝타임은 너무 짧고 아쉬웠다. 엔딩을 맛볼 때면, 꼭 헤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 헤어짐이 영영 익숙해지지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나를 잊을 수 있어서다. 영화에 비해 압도적으로 긴 러닝타임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사소하고, 더 친절하다.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다. 드라마는 드라마니까. 모든 우연과 기회가 마법처럼 찾아오는 공간이니까. 그래서 동시에, 드라마의 엔딩이 주는 상실감은 영화가 끝날 때 오는 상실감보다 크다. 16회 차 동안 차곡차곡 쌓인 상실감이라서. 그리고 진짜 같은 가짜에서 이젠 진짜 내 세계를 마주해야 할 순간이 찾아오니까. 상실감에 두려움이 더해져 헛헛함으로 밀려온다. 이 헛헛함을 밀어내기 위해 다른 드라마를 찾는다면, 그건 더 큰 실수다. 그 헛헛함이 배가 되어 돌아오니까.


최근  편의 드라마를 끝냈다.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뜻이다. 연말과 새해를 드라마로 불태웠다. 정주행을  끝내서 그런가 마음이 무지하게 허하다.


2021년엔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그러니까 임용고시를, 준비하겠다고 2020년에 마음먹었다. 나한테 임용고시는 지난 2년간 부렸던 생떼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다. 그동안 이불에 파묻혀 있느라 하지 못했던 시간 개념을 회복하자는 의미다. 일상의 규칙과 반복을 되찾자는 의미다. 하지만 난생처음 듣는 계절학기 수강으로 시간 개념이 사라져 버렸고, 1월 14일인 지금 여전히 새해가 되었다는 감각이 낯설다. 사실, 해는 똑같이 지고 뜨길 반복하고,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연말과 새해는 단 하루 차이일 뿐인데. 그 사이엔 참 많은 것들이 바뀌고, 새로운 다짐을 세워야 하는 게 야속하기도 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온갖 미디어에서 말하는 ‘새해’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올해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많이 생각했다. 그 다름은 잠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년간 잠에 매여 살았다. 물론 많이 밝아진 건 사실이다. 활동성 있는 성격이 된 것도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내 하루의 대부분은 잠이고, 잠이고, 잠이다. 무너진 패턴을 되찾는 일은 어렵다. 그 무너짐이 서러워서 마음도 어려워진다. 나는 아직도 규칙적이고, 활동적이며, 마르고, 우울했던 22살의 오은진을 그리워하며 잠을 찾는다. 딱 한 번만, 그때로 돌아가는 행운이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잠든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절대 주어질 리 없고, 그때로 되돌아가는 방법은 무너진 패턴을 다시 쌓는 것이 유일하다. 그래서 매일 밤, 22살의 그때로 돌아가는 상상과 함께, 내일은 낮잠을 자지 말아야지 내일은 활기찬 하루를 살아야지 다짐한다. 그 다짐들 한편으론, 사실 내일도 해내지 못할 거란 패배감이 자리 잡아서 복잡함이 되고, 두통과 불면이 된다.


이런 생각들로 어질러진 마음을 달래고 잠에 들 수 있는 방법은 드라마 같은 상상을 계속하는 거다. 그래도 꿈속에선 내 일상도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 내 맘대로 내 의지도, 내 몸도 바꿀 수 있는 곳이니까. 이렇게 상상을 하다 보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카프카의 ‘변신’을 ‘벌레’로 기억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