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반문하는 습관
요즘 반문을 습관으로 삼으려고 노력 중이다. 반문하지 않으면 끝없이 실수만 생산해낼 것 같아 두렵다. 말과 글을 여기저기 뱉고 다니면서 얻게 된 고민거리다. 이 글을 올릴까? 왜 올리고 싶은 건데? 올려도 될까? 끝없는 반문 끝에 올리지 않은 글도 더러 있다.
요새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1월에 인턴 지원을 했는데 떨어졌다. 콘텐츠 마케터 인턴을 지원했는데, 내 지원서랑 포트폴리오를 읽어보신 팀장님께서 불합격 통보와 함께 밥을 사 줄 테니 한번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용쓰는 게 너무 느껴져서 언니로서 밥 한 끼 사주고 싶으셨다고. 그래서 CMO와 CEO 분들을 만났다. 약속을 잡고 실제로 만나기 전까지 아니 CEO가 날 만나고 싶다고? 왜? 내 글은 공감은 돼도 돈은 못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직접 가기 전까지 많이 떨렸고, 만나서도 떨렸고, 헤어진 이후로는 두렵다. 기껏 시간 내서 만났는데, 대화를 통해서 나한테 실망하셨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 때문이다. 사실 실망을 해도 어쩔 수 없는 거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고, 영영 다시 안 볼 수도 있는 데 말이다. 내 고민을 눈치채고 먼저 손을 내밀어준 그 어른들이 고마웠다. 동시에 그때의 대화는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줬다. 내 언어와 글에 대해서.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걸 좋아한다. 글감은 주로 외로움, 골치 아픔, 우울과 분노의 정서다. 근데 내 감정을, 추한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그분들과의 대화에서 느꼈다. 너무 현실적인 조언이라 알려주신 게 고마웠지만, 동시에 비참해진 것도 같다. 여전히 감정이 공적, 경제적 영역에선 관리의 대상이라는 게 슬펐다. 그렇다면 이제 무얼 써야 하지.라는 고민도 뒤따라왔다.
내 글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이런 것들을 일기장에 쓰지 않고 여기에 쓰는 이유는, 만약 예전에 나처럼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해 외롭고 아픈 사람이 있다면 안 그래도 된다고, 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서다. 섣부른 위로나 조언보다는 아, 나는 이랬어. 너의 아픔을 조금은 짐작할 것도 같아. 너도 너의 방식을 찾고 조금은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어서다.
대학 알리에 들어가고 나서도 내 이야기를 자주 기사로 썼다. 그리고 내 주변의 이야기를 자주 끌고 오기도 했다. 나는 당사자성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당사자만이 줄 수 있는 솔직함이 좋아서다. 그래서 내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썼다. 내 글에 문제의식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 문제로 세상을 읽어내고 싶었다. 근데 10월에 신입기자분들이 들어오고 기획안을 발제해오는 과정에서 내가 출판한 기사들이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독자들에겐 내 이야기가 그냥 하고 싶은 말 많은 사람의 하소연?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하게 됐다.
써야 할 이야기가 있고, 쓰지 말아야 할 이야기가 있다. 쓸 수 있는 게 있고 쓸 수 없는 게 있다. 그 선을 지키는 게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