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적인 문장의 화살
언젠가 "잠이 오지 않아 쓰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이건,[나는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잔다] 매거진의 첫 발행 글이었다. 그리고 방금 이런 말을 들었다. "야 넌 그렇게 위험한 걸.. 잠꼬대야 잠꼬대를... " 이 미묘한 조사들을 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왜 하필 난 국어국문학과일까. 끔찍하도록 중의적인 저 문장의 화살을 난 나에게로 돌릴 수밖에 없다.
난 잠꼬대가 많다. 정말이지 어마 무시하게 많다. 그건 중학교 수련회 때 처음 알았다. 낯선 곳에 가면 거의 무조건 잠꼬대를 한다는 걸 알았다. 친구들이 "야, 너 어제 잠꼬대했어, 나 어제 진짜 깜박 속았잖아." 하면서 웃으며 말할 때면 머쓱하지만 그저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뒤론 애들에게 미리 공지를 하고 잤다. "얘들아, 나는 낯선 곳에서 자면 잠꼬대를 하는 버릇이 있어. 놀라지마들ㅋㅋㅋ" 그럼 애들은 그저 웃어 넘겨줬다. 수련회에서 내 잠꼬대는 그냥 웃긴 해프닝, 친구들의 기억에선 이미 휘발되고도 남았을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 잠꼬대는 집에 오면 대우가 달라졌다. 구박받고 천대받았다. 엄만 내 잠꼬대를 이상한 것으로 여겼다. 난 자면서도 문제가 있는 아이처럼 여겨졌다. 난 반대로 여겼다. 집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내가, 오히려 집에 가는 마을버스 안에서 숨이 막혀 공황이 오는 내게 꿈속에서 할 수 있는 말, 즉 잠꼬대는 내게 자유의 또 다른 대체어라고 생각했다.
참 웃긴 건, 사람은 누구나 잠꼬대를 한다는 거다. 우리 엄마도 잠꼬대를 한다. 난 그걸 엄마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의 잠꼬대의 대상은 대부분 나다. 그리고 대부분이 나를 꾸짖는 내용이다. 그래서 난 엄마 꿈속에서의 내가 가엾다. 끔찍할 자기 연민 일지 모르지만, 내가 엄마의 꿈속에서 무슨 위험한 짓을 했는지, 아니면 내 잠꼬대가 왜 위험한 것인지 모르겠다.
혹 그가 내가 수면제를 먹어 잠꼬대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 잠꼬대가 위험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난 오늘 저녁 8시에 잠들어 자정이 될 즈음 일어났다. 날 잠들게 한 건 하루의 고단함이었을 뿐, 수면제가 아니다. 수면제는 지금 먹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말 한 마디 덕분에 수면제의 약효는 오늘도 발휘하지 못할 듯 하다.
이젠 더 이상 엄마와 나란히 자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와 나란히 잔다. 우리 집엔 문이 없으니까. 완전히 독립된 나만의 공간이 없으니까. 난 여전히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