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내가 안쓰러웠다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대학교 상담센터의 문턱을 넘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그때의 내게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건, 내가 기어이 미쳐버렸음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일이었다. 밖에서는 왁자지껄하게 세상 좋은 사람 노릇을 하며 웃었지만, 언덕 위 낡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면 곧장 모든 표정을 분실했다. 불 꺼진 거실, 공허하게 빛나는 낡은 텔레비전 앞에서 나는 닥치는 대로 음식을 욱여넣었다.


배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면 변기 앞에 앉아 손가락을 목구멍 깊숙이 찔러 넣고 모조리 게워냈다. 얼굴로 압이 쏠려 눈동자가 터져나갈 것 같았고 콧물이 꼴사납게 흘렀다. 비누로 몇 번이나 손을 씻어도 손끝에는 기어이 역겨운 위액 냄새가 남았다. 그러고 나면 다시 지독한 허기가 찾아왔다. 이게 미친년이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였다. 나는 결국 나에게 졌다.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내가 미친년임을 인정하는 항복을 선언했다.


친구들 눈을 피해 센터를 찾았다. 복도는 지나치게 고요해서 내 발소리만이 내밀한 비밀처럼 울려 퍼졌다. 학생들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세심히 배려된 구조가 오히려 내가 격리되어야 할 존재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묘하게 서글펐다.


상담실의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한 건 아주 중립적인 온도의 공기였다. 상담사와 처음 눈이 마주친 순간, 괜찮은 척하는 가면 속 내 진짜 얼굴심리학 공부 많이 한 이 사람 앞에서 얼마나 쉽게 들킬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창피했다. 그녀는 내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종이컵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지만, 내 입술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내가 덜 미친 사람처럼 보일지, 어떻게 해야 불쌍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 상태를 증명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문장을 골랐다.


상담사는 모든 내용이 비밀로 유지되지만 심각한 자살 위기군일 경우 주변에 알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는 차를 한 모금 삼키며 자살 충동만큼은 기필코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들키는 건 창피하고 귀찮을 일이 될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구질구질한 가족사는 입 밖으로 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포장하고 싶었다. 남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늘 밝은 척 애를 쓰느라 집에 오면 너무 공허하다고, 적당히 가공된 진실만을 말했다.


"서영 씨는 타인을 많이 의식하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전 친구들이 머리를 바꿨는지 옷을 샀는지 하나도 못 알아봐요. 남한테 정말 관심 없어요."

"남을 배려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타인의 눈동자에 비칠 서영 씨의 모습에만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서영 씨는 역설적이게도 타인에게 지독히 무관심한 거예요. 그 안엔 온통 서영 씨 자신뿐이니까요."


그제야 알았다. 내가 타인에게 무심했던 건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 비칠 내 실루엣을 다듬느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 눈에 비친 대학 동기들은 다들 어찌나 투명하고 해맑던지. 술과 여행, 교환학생을 말하는 그들의 고민은 내게 너무나 싱거웠다. 나도 그 따위 고민이나 하면서 살고 싶었다. 부러워하며 동경하기도, 한심해하며 내려보기도 했다. 나도 그 해맑은 대학생 대열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활짝 웃는 가면을 쓰고 수면 아래의 백조처럼 부지런히 발을 저었다. 별다른 고뇌 없이 당차고 활기찬 표준의 대학생을 연기했다.


하지만 매일 밤, 내 현실로 들어서는 첫 번째 관문인 낡은 유리문 앞에 서야 했다. 도어록을 달고 싶어도 너무 낡아 불가능하다던 그 문. 매번 열쇠를 꽂아 삐걱 돌려야만 열리는 그 고루한 문 앞에서, 나는 비로소 친구들과 나 사이의 아득한 괴리를 실감했다. 열쇠를 깜빡한 날이면 문밖에서 하염없이 서성여야 하는 내 처지가 꼭 내 인생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 가슴속이 텅 비었다. 온종일 미친 듯이 휘저었던 발바닥에선 진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뭍으로 올라오자마자 탈진해 버리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의 노래 가사가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상담사에게조차 폭식증을 숨기고 부모님 이야기를 지우며, 미친년이 아니라 그저 잠깐 우울한 대학생으로 보이려고 발버둥 치던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더 나은 나로 살기 위해 자꾸만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히기를 선택했다. 정작 가면 속 나는 채찍질하듯 몰아세우다가 벼랑 끝에 세웠다. 그 모순된 감옥 속의 내가 안쓰러웠다. 처음이었다. 나를 파괴하고 싶은 게 아니라 안쓰러웠던 적은.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나에게 내리는 체벌, 폭식과 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