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죽자니 억울해서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임용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낭떠러지 끝에 발가락만 걸치고 서 있는 기분으로 매일을 보냈다. 재수는 사치였다. 집안 형편도 문제였지만, 내 안에는 이미 순희가 층층이 쌓아 올린 부채 증서가 가득했다.


순희는 아빠 재훈과 다투거나 다른 형제에게 실망한 일이 있으면 나를 붙잡고 나직이 읊조렸다.

“너 아니면 나는 벌써 죽었어. 너 때문에 사는 거야.”

이상한 남편과 혹독한 시부모 밑에서 자신이 얼마나 깎여 나갔는지, 그 폐허 속에서 자식들을 키워내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순희는 반복해서 전시했다. 어린 나는 순희가 해석한 순희만 억울한 세상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세계에서 나는 순희의 유일한 구원이자 희망이 되어야 했다. 순희는 그 희망이라는 단어 아래 빠른 합격과 보상이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교묘하게 숨겨두었다.


순희의 가스라이팅은 정교하고 집요했다. 내가 대학 시절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옷 한 벌을 사면, 순희는 옷감을 만져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좋은 거 사 입네? 엄마 거는?”

내가 누리는 모든 안온함과 기쁨에는 반드시 순희의 몫이 배당되어야 했다. 자기가 나를 낳고 키웠으므로 나의 성취는 곧 순희의 전유물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순희는 자식을 상대로 한 이 기만적인 계약을 20년 넘게 성공시키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합격하고 돈을 벌어서 순희에게 갚아야 한다는 부채감이 내 안에 켜켜이 쌓였다.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하면서부터 식곤증이 사치스러워 하루 한 끼로 연명했다. 오전부터 밤까지 내 몸은 오로지 합격을 위해서만 움직였다. 순희의 빚을 갚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가는 기계 같았다.


오랜만에 입국한 친척 언니가 밥을 사주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나는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답장을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언니, 진짜 미안한데 합격하고 만나자. 밥 먹으러 나갔다가 떨어지면 어떡하나 싶어서 마음이 안 편할 것 같아.”

“떨어질 수도 있지, 너 너무 스스로를 들볶는 거 아니야?”

“언니도 알잖아, 우리 집 사정. 합격하고 보자.”


강박은 나의 유일한 연료였다. 10분 단위로 조각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신경을 팽팽하게 쥐어짰다. 시험을 한 달 앞둔 날, 기어이 사달이 났다.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더니 이불속에서도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도서관은커녕 물 한 모금 넘길 기운이 없었다. 순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오는 길에 약 좀 사다 줘.

한참 뒤에야 답장이 왔다.

-엄마 오늘 늦어.

-늦게라도 사다 줘.


땀에 절어 앓다 보니 밤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나 병원 좀 데려가 줘. 너무 아파.

“좀만 더 있다 갈게.”


수화기 너머로 아주머니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순희는 삼 남매를 키우는 내내 밥 먹듯 외박을 했다. 자식들을 두고 밖에서 밤을 지새울 만큼 즐거운 게 대체 무엇인지 늘 궁금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그날은 서운하다는 말로 비할 수 없었다. 합격해서 순희의 자랑이 되겠다고, 순희가 내게 심어준 그 무거운 희망을 짊어지고 1년을 기어 왔는데. 정작 그 짐의 주인은 밖에서 남들과 웃고 떠드느라 내가 죽어가는 것조차 안중에도 없었다.


순희에게 나는 구원자이기 이전에,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담보대출 상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서운함을 넘어선 살기가 치밀었다. 비이성적이고 과도한 분노. 나 자신과 타인을 향한 무차별적인 살의가 일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죽이고 싶었다. 나를, 그리고 순희를. 살기 어린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노려보며 문자를 찍어 눌렀다.

-너 같은 게 내 엄마라는 게 엿같다.


제멋대로 살면서도 타인의 비난에는 발작하는 순희는 즉시 전화를 걸어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휴대폰 전원을 꺼버렸다. 땀에 절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짐을 쌌다.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던 태양고시원으로 향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는 기어코 정상인이어야 하는 나는, 시험 한 달 전이라 공부에 집중하려고 입실한다는 능청스러운 거짓말을 하고 304호를 배정받았다.


1인용 침대와 책상이 조립된 아주 작은 방. 앞 건물에 막혀 햇빛은 팔꿈치만큼만 겨우 들어오는 그 방에서 나는 죽이고 싶은 충동을 삼키며 울었다.


지난 1년의 시간이 아까워 책을 펴보았지만, 글자 위로 눈물이 번져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눈물만 뚝뚝 떨구다가 더는 책을 적실 수 없어서 덮고 나면 끅끅 울음을 삼켰다. 방음이 안 되는 고시원에서 엉엉 우는 미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절박하게 목구멍을 눌렀다. 여전히 임용고시는 내게 절박한 출구였지만, 시시각각 출입구가 멀어지는 것 같았다. 겁이 나고 초조했다. 불안하고 억울하고 슬프고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초연해졌다.


'임용고시에 떨어지면 순희 앞에서 보란 듯이 죽어야지. 내가 죽는다고 순희가 슬퍼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보통 말도 못 할 고통을 겪는다니 그 말을 믿고 순희 눈앞에서 죽어야지.'


그런 생각을 했더니 더는 억울하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복수였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지겹고 버겁고 싫었다. 그냥 죽자니 억울해서, 이 기회에 죽음에 복수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태양고시원 304호에서 나는 계속, 계속, 계속 울며 어떻게 죽어야 효과적인 복수일지 고민했다.




달아주시는 댓글 감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덕분에 마음이 훨씬 나아지곤 합니다. 대댓글 달아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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