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해가 가장 깊이 들어도 얼굴에는 채 닿지 못하던 태양고시원 304호. 좁고 습한 책상 앞에 앉아 며칠을 눈물만 뚝뚝 떨궜다. 그러다 이 일이 내가 죽어도 될 만한 이유가 된다고 느꼈을 때, 나를 삭제함과 동시에 복수할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내 동공이 선명해졌다. 상상 속의 나는 높은 곳에서 낙하하고, 목을 매달고, 물에 빠져 죽었다. 나를 파괴하고 망가뜨려 결국 없애버리고 싶었던 오랜 욕망이 원 없이 실현되었다.
일주일은 족히, 너무 죽이고 싶었던 나를 내가 반복해서 죽였다. 그러다 갑자기 자꾸만 죽임을 당하던 내가 버럭, 정말 내가 이렇게 죽어야 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사실은 나를 너무나 아끼고 사랑해서, 누구보다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었던 내가 서럽게 울먹이며 나를 구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이 시궁창 같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재훈이 자식들 얼굴조차 보기 힘들 정도로 평생 노동에 매달려도, 어머니 순희는 텅 빈 가슴을 채우지 못해 늘 전전긍긍했다. 만 원, 이만 원에 부모님은 다투었고, 우리 남매는 늦은 밤까지 텔레비전 불빛을 자장가 삼아 잠에 들곤 했다. 집은 춥고, 어둡고, 무서웠는데 특히 자꾸만 출몰하는 바퀴벌레가 귓구멍에 들어갈까 봐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겨우 숨을 쉬었다.
나는 어떻게든 이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주변에서 공부로 자수성가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지만, 공부만이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줄 유일한 비상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아주 어려서부터 글자에 매달렸다.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꼼꼼하게 복습했다.
달동네를 벗어나 아파트 단지 중학교에 가서도 전교 1등을 턱턱 해냈다. 어른들의 기대를 등에 업고, 순희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며 나는 쉼 없이 달렸다. 하루도 공부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수능에서 미끄러져 뒤집어지게 인생을 바꿀만한 직업을 얻진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가난하고 마음이 병든 내가 당차고 활기찬 대학생을 연기하면서 대학생활을 어떻게든 무사히 해내려고 용을 썼다. 이제 임용고시라는 마지막 관문 앞에 서있었다. 하지만 고지에 거의 다 와서 내가 완전히 고장 나 버렸다. 하루 종일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공들여 쌓아 온 모든 것이 무너져 임용고시마저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가 나를 덮쳤다. 임용고시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죽어야 엄마 순희에게 효과적으로 복수할 수 있을지를 일주일 내내 궁리하고 있었다.
억울했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어서 다른 길로 새지도 않고 나를 채찍질하며 달려왔는데, 그 노력이 나를 탈진하게 만들고 이제는 죽음까지 고대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던 나를 내가 죽이려 하는 이 모순 앞에서 나는 엉엉 울었다. 정말 이대로 끝내야 하는 걸까. 나에게도 가볍고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뿐사뿐 사는 날이 올 수는 없는 걸까.
내가 나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던 그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SOS가 터져 나왔다. 사실은 너무 간절히 살고 싶다고. 임용고시에 떨어지더라도, 부모를 실망시키고,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기대를 걸었던 그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더라도 살고 싶다고.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모두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기만 한 표정을 지어보고 싶었다. 그게 죽음을 위한 낙하의 순간이 아니고, 삶을 위한 비행이길 바랐다.
몇 년 전 처음으로 SOS 신호를 띄웠던 대학교 상담센터가 생각났다. 며칠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텅 빈 눈동자로 상담센터 문을 열었다. 상담 선생님은 전화를 하며 서류를 들추느라 처음엔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상담... 할 수 있나요?"
"학생, 지금은 너무 바빠서 우선 예약을 잡아볼까요?"
정신없는 와중에 애써 성의를 보이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든 선생님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그제야 선생님은 보았다. 한겨울 나뭇가지처럼 위태롭게 서 있는 나를. 순간, 선생님은 바쁘게 들춰보던 서류를 탁 덮었다. 그러고는 깍지 낀 두 손을 모아 잡으며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이리 들어와요. 같이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목소리가 단단한데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눈빛은 갓 말린 솜이불처럼 폭신하고 살가웠다. 내가 나를 파괴하지 않게 도와달라는 처절한 신호에,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응답해 준 사람이 거기 있었다. 솜이불 닮은 눈빛을 받으며, 비로소 큰 숨을 한 번 들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