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내리는 체벌, 폭식과 구토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교양 수업 시간, 각종 정신질환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그날의 발제자는 내 동기였고, 주제는 폭식증이었다.


"막 먹고 일부러 토하는 걸 반복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뭐 이런 병이 다 있나 싶네요."


동기가 발표를 마무리하며 가볍게 던진 한마디. 그 순간 나는 은밀한 단절감을, 숨기고 있다는 죄책감을, 그리고 들켰을 때를 대비해 미리 당겨 쓰는 수치심을 느꼈다. 익숙하지만 종국엔 자기혐오만이 진하게 남는 일이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애를 쓰며 지독한 폭식증을 앓고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어느 날부터인가 밑바닥 없는 허기가 찾아왔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는데, 길목에 파리바게트가 있었다. 처음엔 그저 배가 고파 크림빵이나 꽈배기를 한두 개 샀다. TV를 틀어놓고 그것들을 씹어 삼키면 잠이 솔솔 왔다. 그때까진 정말 배가 고픈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허기는 금세 몸집을 키웠다. 나중엔 내 손에 식욕을 통제할 고삐가 들려 있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밤식빵과 마늘 바게트, 롤케이크를 해치우고도 허기가 가시지 않으면 찬장을 뒤져 떡이든 과자든 입에 닿는 대로 욱여넣었다. 차라리 폭식만 했다면 나았을까. 문제는 사랑받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가 늘 세트로 배달된다는 점이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마르고 예쁜 몸은 사랑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었고, 빵을 잔뜩 먹고 부어버린 얼굴은 나를 미워해도 좋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생각했다.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하겠어. 방금 먹은 게 소화되어 살로 덕지덕지 붙어버리면, 정말 아무도 나를 찾지 않을 거야.’


결국 변기 앞에 섰다.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늘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주문을 외운다.


"오늘만이야. 방금 먹은 것만 꺼내면 돼. 다신 안 그럴 수 있어."


배설의 공간에 얼굴을 바짝 들이민다. 오줌 방울이나 변 자국이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곳에 얼굴을 처박고 손가락을 목구멍 깊숙이 쑤셔 넣는다. 꾸액, 꾸액. 멱이 따이는 돼지 같은 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진다. 이건 존재부터 잘못된 나에게 내리는 스스로의 체벌 같기도 했다. 침 범벅이 된 얼굴, 손끝에 배어버린 위액 냄새,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와 쓰라린 목구멍. 그런데도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먹었는데, 살은 찌지 않을 거라서. 그건 너무 다행인 일이라서.


제정신일 땐 빵집만 지나치면 해결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즈음의 나는 자꾸 술을 찾았다. 호탕하고 성격 좋은 가면을 쓴 나를 동기들은 부지런히 불러냈고, 나는 거절하는 법을 몰랐다. 거절했다가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떡해. 아무도 나를 찾지 않게 되면 어떡하냐고. 약속이 없어도 술을 마셨다. 맨 정신으로 견디기엔 세상이 너무 외로웠다.


술자리에선 안주를 멀리했다. 살찌면 안 되니까. 그러나 취기가 오르고 이성이 흐릿해지면 어김없이 진짜 허기가 몰려왔다. 뭐라도 채워 넣어야만 하는 강력한 충동. 집에 오는 길에 한 보따리 음식을 사들고 들어와 비밀스럽게 욱여넣고, 다시 게워냈다.


증세가 심해지자 가족들이 집에 있어도 충동을 이길 수 없었다. 살이 될 것들을 빼내야 한다는 조급함이 수치심을 압도했다. 샤워기를 세게 틀어놓고 게워내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화장실 문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련하게 먹고 토하니."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나를 걱정하진 않았다. 그저 하찮고 한심한 것을 본다는 듯한 말투. 내 안의 오물을 쏟아내는 소리 위에 자식을 냉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훑고 지나갔다. 나에겐 무너져 내리는 걸 막아줄 언덕이 없었다.


반복된 구토로 손등엔 치아 자국이 흉터처럼 남았고, 침샘은 볼거리라도 걸린 듯 흉하게 부어올랐다. 사람들이 알아차릴까 봐 두려웠다. 허기는 참을 수 없는데 살이 찌는 건 죽기보다 싫고, 미친 사람 취급받기는 무서운데 나를 멈출 수도 없는 상태. 할 수만 있다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싶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나는 나를 구할 수가 없다는 걸.


다행히 학교 상담센터가 있었고, 무료였다. 그때의 나는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쪽배에 타고 있었고, 상담센터는 그 옆을 지나가는 거대한 군함 같았다. 당신들이 나를 건져낼 수 있다면 제발 좀 건져달라고, 나는 그렇게 SOS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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