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수능에서 미끄러졌다. 모의고사 내내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던 과목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나를 배신했다. 쉽던 건 어렵게, 어렵던 건 싱겁게. 세상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운명의 신이 정교한 핀셋으로 나만 콕 집어 낭떠러지 아래로 툭 떨어뜨린 게 분명했다. 재수학원에 보내달라는 말 따위는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는 형편의 나를 도대체 왜.
성적이 나오고 진학 담당 교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숫자를 읊는 내 목소리 끝엔 기운이 없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돌아온 건 짧은 탄식이었다.
"아... 그러니?"
그게 다였다. 교사조차 예상하지 못한 낮은 점수. 실망은 알겠으나, 수고했냐고 한 마디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 나한테 그렇게 친절했었으면서.
원서를 쓸 무렵, 순희와 재훈은 입을 모아 말했다.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고. 집 근처 국립대에 가면 등록금도 싸고 차비도 안 드니 얼마나 좋냐고. 의욕도 기회도 박탈당한 나는 그저 부모의 뜻대로 원서를 밀어 넣었다. 그곳은 내 미래를 위해 지불할 수 있는 가장 싼 기회비용이었다.
등록금 고지서에는 180만 원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그날 밤, 순희와 재훈은 누가 이 돈을 낼 것인가를 두고 격렬하게 다퉜다. 순희는 자식 셋 키우는 비용을 아느냐며, 갖다 줘 봤자 얼마나 갖다 주느냐고 악을 썼다. 월급을 통째로 집에 갖다 바치고 푼돈을 받아 쓰는 재훈은 그 악다구니 앞에서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저 기세에 밀려 재훈이 돈을 구하지 못하면 대학에 갈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내가 고른 가장 낮은 비용조차 저들에게는 서로 떠넘기고 싶은 짐이었다. 가난과 부모, 그리고 내 처지가 눈물 나게 지겨운 밤이었다.
대학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시시했다. 어른들은 공부만 하면 인생의 모든 매듭이 풀릴 것처럼 굴었지만,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지부진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국립대엔 나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가득할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대치동 키즈, 의사 딸, 변호사 아들. 내 집에 돈만 있었다면 결코 오지 않았을 이곳을, 그들은 미끄러져서 왔다.
부모의 재력이라는 배경지는 그들과 나의 삶을 시작점부터 갈라놓았다. 수능이라는 도착점만 보고 경주마처럼 달리던 고등학교 방학보다 잔인한 건 대학생의 방학이었다. 방학이 되면 동기들과의 격차는 잔인할 만큼 선명해졌다. 동기들이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해외여행을 떠날 때, 나는 과외 자리를 뒤지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 부모는 등록금 180만원을 두고 밤새 다퉜는데, 교환학생 비용 얼마 안 한다고 너도 같이 가자고 하는 순수한 동공들이 겁이 났다. 길고 긴 방학 동안 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소주나 들이켜다 스스로가 한심해지면 도서관에 갔다. 비뚤어진 마음을 비집고 들숨을 들이키고 싶어서 심리학 서적들을 뒤적거렸다.
공부 열심히 하면 잘 살게 된다는 말에 매달려 십 대를 버텼다. 그리고 겨우 도착한 곳에 희망은 없었다. 결국 애초에 잘 사는 집 애들이 계속해서 잘 산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을 뿐이다. 흐름을 뒤집어보려 악바리처럼 매달리고 싶었지만, 수능과 가난에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내겐 그럴 동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대학에 오고 나서야 박탈감과 시기, 질투와 억울함 같은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왔다. 뒤늦은 사춘기치고는 너무나 혹독했다. 그동안 미뤄둔 온갖 마음의 병이 숙제처럼 찾아왔다. 폭식증과 가면증후군, 그리고 누군가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지독한 애정결핍까지. 나의 진짜 지옥은, 이제 막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