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끊어내거나

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by 엄서영

바퀴벌레와 개미는 당파 싸움을 한다. 언덕 위 낡은 우리 집 나무 벽은 세월이 스며들어 여기저기 갈라지고 부서졌는데, 그 틈으로 봄 온기가 스며들면 꼭 개미 아니면 바퀴벌레가 창궐했다. 개미가 막 기어 나와 힘을 빼놓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바퀴벌레가 득세하면 개미는 자취를 감추곤 했다. 개미는 거슬려서 싫고, 바퀴벌레는 징그러워서 싫었다. 특히 그 바퀴벌레의 발자국 소리. 진득한 장판에 네 발이 닿을 때마다 나던 타다타다 소리. 그게 못 견디게 싫었다.


​또다시 부모가 돌아오지 않는 여름밤이었다. 남동생은 방에서 자고, 나만 거실 바닥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정규 편성이 다 끝나고 회색 화면이 지지직 소리를 낼 때까지.


​현관에서 엄마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내 의식이 그 소리를 인식하며 조금씩 깨어날 무렵, 팔 위로 무언가 타다타다 기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스름한 새벽빛 속에 비친 실루엣은 바퀴벌레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팔을 쳐냈고, 바퀴벌레는 바닥에 탁, 뒤집힌 채 떨어졌다. 배를 깐 바퀴벌레가 여러 개의 다리를 버둥거리다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소름이 돋아 뒷목이 뻣뻣하게 굳었다.


​엄마 순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내 팔에 바퀴벌레가 기어 다니고 있었어. 쳐내니까 뒤집혀서 버둥거리다가 도망갔어.”

순희가 나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내가 순희에게 바퀴벌레 이야기를 한 건, 이제 늦지 않게 집에 돌아와 우리를 지켜달라는 고백이었다. 이 집에서 나를 구해달라는 신호였다. 그게 힘들다면 방역이라도 해달라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달라는 호소이기도했다. 그런데 순희는 웃었다. 순희는 항상 그랬다. 나에게 일어난 불행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건너편 구경꾼처럼 나를 내려다보며 조소했다.


​순희는 내가 잘되기를 누구보다 고대했다. 오래된 가난과 부족함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자식. 말 잘 듣고 공부도 곧잘 하는 내가 순희에겐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내가 가져오는 성적표는 순희에게 희망이자 트로피였다. 순희는 내 성적에서 자신의 거창한 미래를 엿보았다.


​동시에 순희에게 나는 응징의 대상이기도 했다. 둘째 동서도, 셋째 동서도 모두 첫째로 아들을 낳았다. 남편이 장손인데 순희만 첫째로 딸을 낳았다. 첫째까지는 괜찮았다. 시부모가 구박을 좀 해도, 조바심이 좀 나도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문제는 둘째였다. 아들이었어야 했는데 또 내가 나왔다. 순희는 절망했고 화가 났다. 내가 딸로 태어난 게 누구 잘못일까. 순희도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순희는 자꾸만 나를 응징했다. 내게 일어난 아픔을 지켜주거나 해결해 주기보다는 비웃는 쪽을 택했다. 마치 잘된 일이라는 듯이. ‘네가 나를 초라하게 만든 만큼, 너도 그래야 공평하지.’ 나는 순희의 조소에서 그런 문장을 읽었다.


​태어나고자 한 적 없으나 태어난 것만으로 죄가 되어버린 생. 나의 원죄가 딸로 태어난 것이라면 살아서 그것을 벗어날 길은 없었다. 아빠가 셋째로 아들을 낳기 위해 들인 노력을 재미난 무용담처럼 늘어놓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내가 딸이라 병원에 오지 않았던 것을 사과할 때, 나는 매번 내 존재 자체가 오류 같았다.


태어난 것만으로 지은 죄가 있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나라는 오류를 스스로 파괴해 순희의 세계를 무너뜨리거나, 아니면 순희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가 숨기거나. 죽거나 끊어내거나. 그 서늘한 갈림길 위에서 나는 오래 서성였다.



매거진의 이전글아파도 혼나지 않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