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불행한 나의 가족
찬 바람을 오래 맞은 탓에 머리 안쪽이 지끈거렸다. 그때 약을 먹고 누웠더라면 좋았을 텐데. 여행지에서 아플 리 없다는 근거 없는 호기를 부리며 선우와 삼겹살을 구웠다. 불판 가득 고기를 올리고, 기가 막히게 무쳐진 파채와 잘 끓인 된장국을 먹었다. 구운 버섯과 김치, 마지막에는 콩나물 넣은 라면까지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기 힘든 통증이 찾아왔다. 누군가 손가락 네 개로 내 뇌를 꽉 쥐고 육수를 짜내는 듯한 감각. 보일러로 달궈진 아랫목에 누워 ‘으으’ 신음을 뱉었다. 그러다 울컥, 구토가 치밀었다. 양손으로 입을 막고 변기로 달렸으나 주체하지 못한 것들이 손가락 사이로 넘쳐흘렀다. 먹은 것들을 역순으로 게워내고 나서도 두통은 여전히 극심했다.
“오빠, 약 좀 사다 줘.”
선우는 강원도 시골에서 편의점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돌아왔다. 자주 체하는 내게 손 따는 게 즉효라는 걸 아는 그의 손에는 바늘과 실도 들려 있었다. 그가 내 등을 두드리고 손끝으로 피를 모아 바늘로 쿡, 검붉은 피를 빼내는 동안 나는 눈도 못 뜬 채 앓는 소리를 냈다. 잠시 진정되었다가 다시 게워내기를 반복했고, 선우에게 재차 손을 따달라 조르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선우는 이불을 죄다 내게 넘겨준 채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품으로 파고들자 괜찮냐는 물음이 돌아왔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눈을 감았다. 동시에 어릴 적 체하고 토할 때마다 혼이 났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여덟 살 무렵의 기억이다. 나는 안방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아빠 재훈은 내 머리맡에 쭈그려 앉아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살폈다. 그러다 왈칵, 구토가 터졌다. 내게 허락된 시간은 고작 2초 남짓. 겨우 몸을 돌려 바닥에 쏟아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습이었다. 하지만 엄마 순희는 소리를 질렀다.
“왜 바닥에 토를 하고 그래!”
재훈이 나를 두둔했다. “일어나자마자 나오는 걸 어떡해. 화장실 갈 틈이 없었다니까.” 재훈이 나를 씻기는 동안에도 순희의 짜증 섞인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나는 혼이 나면서 남은 토사물을 게워냈다.
열 살 때는 외식하러 간 레스토랑에서 치즈돈가스를 먹고 체했다.
“엄마,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너무 아파.”
“비싼 걸 사줘도 먹을 줄을 몰라. 너는 다신 안 데려올테니까 그런 줄 알아.”
나의 호소에 순희는 되려 나를 비난했다. 마치 나의 가난이 자기랑은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이 내려보며 조소했다. 나는 차 뒷자리에서 숨을 죽였다. 정말로 다신 외식에 끼워주지 않을까 봐, 집에 돌아와서도 아픈 티를 내지 못했다. 편들어 줄 아빠도 없는 날, 나는 이불을 가득 끌어안고 눈물로만 울었다.
열세 살의 폐렴 사건도 비슷했다. 병원에 가고 싶다는 내게 순희는 엄살이 심하다며 타박했다. 며칠을 앓다 결국 찍은 엑스레이 앞에서 의사는 “많이 아팠을 텐데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안도했다. 내가 진짜 아플 만했다는 사실이 증명되어서, 별것 아닌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또 혼이 날 테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순희는 미안하다고 말했고, 나는 엉엉 울며 켁켁 기침을 했다.
내가 아픈 것은 엄마를 귀찮게 하는 민폐였고, 혼나 마땅한 일이었다. 아프면 참았고, 참다못해 터져 나와도 돌아오는 것은 순희의 짜증과 화였다. 내가 아파도 하나도 아프지 않은 순희를 바라보는 것은, 이상하고 외로운 일이었다. 자꾸만 아프게 되었던 나의 몸과 나를 돌봐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서러움이 내 안에 켜켜이 쌓인 것 같다. 오래전 엄마를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혼자 서보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밤새 토를 하며 선우에게 떼를 쓰는 나를 발견한다. 약을 사 오고 손을 따주는 분주한 다정함 속에서, 이제야 마음 편히 아파본다. 나에겐 보호자가 너무 절실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