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파도를 기다리며

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by 엄서영

가만히 있으면 후퇴하는 기분이 들었다. 멈추는 법을 잊은 몸은 물장구라도 쳐야 안심이 됐다. 당장 해치워야 할 미션이 없는 날에도 마음 뉘일 곳은 없었다. 늦잠은 용납되지 않았고, 남들이 영어 학원에 가거나 헬스를 할 때 나만 멈춰 있다는 감각은 공포에 가까웠다. 조마조마하고 초조한데 그렇다고 대단히 앞서가지도 못하는 삶. 그래서 나는 자주 피곤하고, 오래 우울했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가고 싶었다. 해안선 기차를 타고 초보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웰리가마로 향했다. 웰리가마의 숙소는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 같았다. 로비는 초록 잎 나무와 풀로 가득했고, 낡은 선풍기 소리와 정체 모를 음악만이 공간을 채웠다. 푹 꺼진 소파와 해먹 위엔 백인 여행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의 노동은 오직 비트에 맞춰 발가락을 까닥이거나, 눈을 끔뻑이는 것뿐인 듯했다. 명상하고, 멍 때리고, 춤추는 하루.


처음엔 그 풍경이 한심했다. 내 속도를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느라 나만 2배속으로 재생되는 비디오 같았다. 조식을 챙겨 먹고, 명소를 찍고,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렸다. 생산성 없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일기라도 썼다. '여기까지 와서 저렇게 시간을 죽이다니.' 나의 성실함을 무기 삼아 그들의 나태함을 비난했다. 다행히 짧은 영어 실력과 미묘한 사대주의 덕분에 그 비난은 내 안에서만 맴돌았다.


하지만 곧 백기를 들었다. 이곳의 온도와 습도는 부지런하기엔 너무나 완벽했다. 그리고 웰리가마는 바닷가 말고는 딱히 갈 곳도 없었다. 20년 넘게 나를 조련한 노예근성이 억울해서 괜한 심술을 부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바다로 나갔다. 할 거라고는 걷는 것, 앉아있는 것, 바라보는 것, 바람을 맞이하는 것이 전부였다. 숙소 골목을 빠져나오면 서핑의 천국답게 보드가 줄을 지어 서있었다. 아무나 붙잡고 서핑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서핑을 배울 수 있었다. 넘어지고 넘어져도 아프지 않은 고운 모래는 덤이었다. 문득 나도 서핑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서핑을 시작하기 가장 좋은 곳에서 첫 서핑을 시작했다.


서핑도 빨리 배우고 싶었다. 금방 잘하게 되어서 "벌써 그만큼이나 해요?"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런데 바다는 내 조급함을 비웃었다. 파도에 올라타는 일엔 요령이 통하지 않았다. 아무리 팔을 저어도 딱 내 근력만큼만 앞으로 나아갔고, 올라탈 수 있는 파도가 오지 않으면 기다려야 했다. 욕심을 부리면 어김없이 물을 먹었다.


오지 않는 파도를 기다리며 보드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바닷물에 닿아 부서지니 눈이 부셨다. 파도 소리가 귀에 닿고, 손가락 끝으로 바닷물을 첨벙첨벙. 코를 통해 들어오는 비릿한 바다 냄새. 물 위에 존재하며 생각했다. 로비에서 발가락만 까닥이던 그들은 게으른 게 아니라, 파도를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파도가 오면 타고, 안 오면 말고. 나는 오지도 않는 파도를 억지로 만들려다 익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웰리가마의 온도와 습도를 따라 나의 하루도 변해가고 있었다. 아침엔 명상 수업을 듣고, 바다에서 구르고, 알람 없이 낮잠을 잤다. 밤엔 머리를 풀어헤치고 춤을 췄다. 3일이면 떠날 줄 알았던 웰리가마에서 나는 열흘 넘게 시간을 흘렸다. 촌스럽게 탄 얼굴과 펌핑된 어깨 근육이 거울 속에 있었다. 못생겼는데 마음에 들었다.


유난히 하늘이 분홍색인 날이었다. 하늘이 쏟아낸 분홍을 바다가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익숙한 산발 머리가 보였다. 비행기 옆자리 탔던 유정언니였다. 반가움에 소리치며 다가가니 언니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부어 있었다. 보드에 맞았다고 했다. 선크림 없이 새까맣게 탄 내 얼굴이나, 눈탱이 밤탱이가 된 언니나 엉망진창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몰골을 보며 칵칵칵 웃었다.


하늘이 분홍에서 남색을 지나 검정이 될 때까지 우리는 바다에 있었다. 오늘 하루만큼 검게 탔고, 오늘 하루만큼 튼튼해졌으며, 오늘 하루만큼 지난한 삶과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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