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웰리가마는 모든 시간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평온하고 수려했다. 그러나 첫 도시에서 여행을 매듭짓기엔 미련이 남았다. 지금의 행복이 스리랑카가 줄 수 있는 최대치인지 확인하고 싶었고, 아직 가보지 못한 풍경들이 자꾸만 미련을 남겼다. 루프탑에서 명상을 가르쳐주던 J에게 작별을 고했다.
“다른 곳으로 가보려고. 네 덕분에 매일 아침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것 같아. 그리울 거야.”
“다시 만날 수도 있지. 네가 돌아올 수도 있고.”
J는 특유의 선명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안았다. 우리는 서로의 등을 토닥이며 각자의 내일로 기꺼이 넘어갔다. 웰리가마의 파란 바다를 등지고 고원지대 누와라엘리야의 초록 숲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주한 짙은 안개와 한기에 몸을 떨었다. 전혀 다른 종류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국인 여행자 준호를 만났다. 대학을 휴학하고 기한 없는 방랑 중이라 했다. 내 안에서 수요 없는 잔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언어 장벽이 사라졌고, 사대주의의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는 인종을 만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기한은 정해야지. 다음 단계도 생각 안 하고 어쩌려고 그래.”
23년 동안 나를 지배해 온 미래 대비 강박과 뼈에 박힌 불안을 준호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모난 구석이 많았다. 다행히 준호는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 애였다.
준호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죽공방에 간다고 했다. 시간을 잡아먹는 귀신의 집 같아서 며칠째 거기서 주구장창 앉아만 있다는 말에 나도 슬쩍 따라나섰다. 공방은 주희와 동식 커플이 운영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만나 사랑에 빠지고, 배낭을 멘 채 이 낯선 곳에 작은 가게를 얻어 1년째 가죽을 만지는 이들이었다.
공방은 정말 준호의 말대로였다. 별다른 인테리어도 없이 책상과 가죽, 바늘과 실, 망치가 전부였다. 창밖으로는 우거진 나무와 새소리가 넘실댔지만, 정작 실내엔 시계 하나 없었다. 적당히 수다를 떨며 가죽공예를 배우다 보니 어느덧 볕의 각도가 달라졌다. 주희가 말했다.
“해 내려갔다. 이제 퇴근할래. 내일 날 밝으면 다시 열어둘게.”
그렇게 그들은 쿨하게 퇴근했고, 나는 홀린 듯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공방을 찾았다. 정말로 시간이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희가 제안했다.
“우리 집 놀러 올래? 저녁 해줄게. 냉장고가 없어서 대단한 건 없지만. 늦으면 자고 가도 돼. 난방이 안 돼서 페트병에 뜨거운 물 담아 안고 자야 하는데, 괜찮으면 와.”
나는 대답 대신 주희와 동식을 빤히 바라봤다. 동식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느질에 열중했고, 주희는 쌍꺼풀 짙은 큰 눈을 깜빡이며 내 대답을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표정, 가난을 숨기려 하거나 민망해하는, ‘너니까 특별히 공개한다’는 식의 비장한 표정 같은 건 없었다.
일단 의심부터 했다. 여행 중이라 저렇게 쿨한 거겠지, 한국 가면 별수 없을 거야. 내게 가난은 수치이자 부끄러움이었으니까. 주희의 표정은 의심할지언정, 가난은 수치라는 명제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가난이라는 죄를 지은 죄수로서, 수치심이라는 형벌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왔다. 왜 저 죄수는 자유로운 표정을 짓지? 연기겠지?
주희는 무해하고 투명한 표정을 지으며 냉장고도 난방기도 없는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제안을 거절했다. 주희의 가난을 마주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가난을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주희의 세계와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날 밤, 천장을 보며 과거의 조각들을 떠올렸다. 언덕 위 낡은 집을 숨기려고 학원 버스에서 내려 어두운 골목을 10분 넘게 뛰던 나. 달동네 사냐며 웃던 동기들 사이에서 비겁한 미소를 짓던 나. 아버지의 낡은 차가 창피해 교문 멀리에 내리려고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던 나. 그 기억 속 내 얼굴에 주희의 표정을 덧입혀 보았다.
'나는 가난해. 그래서 우리 집은 네가 좀 불편할 수도 있어. 올 거면 오고, 말 거면 말고.'
주희의 얼굴을 한 나는 학원 버스에서 집 가장 가까운 곳에 내린다. 기사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고 당당히 골목을 걷는다. 동기들이 무례하게 웃을 때, '그게 너네가 웃을 일이야?'라는 눈빛으로 어깨를 펴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응시한다. 주희라면 '참 무례하네.'라고 생각하며 제 갈 길을 갔을 것이다.
주희의 표정을 빌려 입고 다시 살아본 과거의 나는 여전히 언덕 위 낡은 집에서 살았고, 골목은 멀었으며, 겨울엔 코끝이 시렸다. 가난은 여전히 불편하고 성가신 것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그때만큼 수치스럽거나 부끄럽지는 않았다. 어깨를 펴고 나를 비웃던 이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내가 가난한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주희의 표정을 주워왔다고 지금의 내 인생이 통째로 바뀐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가난이 지긋지긋하고, 돈이 많아 보이고 싶은 욕망에 수시로 휩싸인다. 나의 가난과 모남을 드러내기보다는 숨기려고 한다. 다만, 주눅 든 채 어떻게든 낡은 집과 차를 숨기려 필사적이었던 어린 날의 나에게 이제는 다른 얼굴을 입혀줄 수 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백 마디 위로보다, '그래서 어쩌라고?'라고 반문하는 주희의 그 무심한 표정을 내 과거의 조각에 씌워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성실히 모아 온 수치심들이 힘을 잃고 후두둑 낙하했다.
댓글 달아주시고,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댓글 하나하나 소중해서 여러 번 읽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고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당신은 가난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당신에게 부나 가난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당신은 당신의 부나 가난을 드러낼 때 어떤 표정을 지으시나요? 댓글로 써주시면 또한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여러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