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어른이 되어주려고

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by 엄서영

낡은 동네의 오래된 학교였다. 멀리 솟은 아파트 단지가 어스름하고, 좀처럼 팔리지 않는 낡은 주택과 저렴한 원룸 건물들이 파도처럼 학교를 에워쌌다. 나의 첫 부임지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눈동자와 꼭 닮은 눈동자들을 자주 마주쳤다. 가난과 불화, 불행과 외로움은 꼭 닮아서 하나가 발을 들이면 나머지도 줄줄이 따라붙곤 하니까.


첫 제자들은 고작 열 살이었는데 학급 명단 속 복영이의 이름 옆엔 별이 세 개나 달려 있었다. 선배 교사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복영이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거칠 것 없는 날 것의 아이였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너무 검고 거대한 무언가를 상상했다.


첫날 마주한 복영이는 유난히 작고 마르고 희었다. 안도감도 잠시, 급식소에서 복영이는 들리지도 않는 의자를 집어던지겠다며 악을 썼다. 제 분에 못 이겨 눈을 뒤집으며 소리를 지르는데, 그 아이가 너무 작고 야위어서 엉엉 울고 싶어졌다. 도대체 어떤 기억과 시간이 이 작은 몸을 덮쳐버린 걸까. 아이가 제 삶의 길이와 똑같은 흉터로부터 영영 벗어날 수 없으면 어쩌나. 그런 생각들로 마음이 심연에 잠겼다.


복영이는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매일 자신의 관절과 시간을 맞바꾸며 돈을 벌었다. 하루 분의 관절값이 하루의 일당이 되는 삶이었다. 겨우 스물네 살 먹은 내가 복영이의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금의 나였다면 이런저런 뒷감당을 계산하느라 결코 보내지 못했을 거다.


"아버님, 많이 지쳐 계실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님이 살아가는 이유도 결국 복영이겠지요? 복영이 하나 잘 키워내면 다 퉁 쳐지는 것 아닐까요. 조금만 더 힘을 내주세요. 저도 학교에서 복영이를 위해 애를 써볼게요."


그날 밤, 독서 모임 도중에 전화가 왔다. 복영이 아버지였다. 혹여나 건방진 참견이라며 욕을 처먹을까 봐 무서웠지만 받아야 했다. 어차피 한 번은 통과해야 할 관문이었다. 숨을 후 뱉고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복영이 아버지가 꺼이꺼이 울었다. 술기운 섞인 횡설수설 끝에 터져 나온 그 울음은 복영이가 울 때와 똑 닮아 있었다. 마르고 하얀 아이가 슬픔을 삼킬 방법이 없어 내는 목구멍 끝 소리.


"선생님,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아비로서 부족한 거 아는데, 정말 너무 힘이 들어요."

"아버님,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계신다는 거 저도 알아요."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욕 대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봄밤의 벚꽃 잎 같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은 하늘에 벚꽃 잎이 분분히 흩날렸다. 복영이가 이불은 덮고 자려나 생각했다.


다음 날, 복영이는 아버지가 차려준 스팸과 콩나물국을 먹고 왔다고 했다. 다음 주엔 새로 산 옷을 입고 왔고, 다음 달엔 아버지와 영화를 보러 간다고 자랑했다. 나는 복영이의 아버지가 고마웠고, 감히 그 사람이 기특했다.


내가 복영이에게 줄 수 있는 건 그저 애정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받고 싶었던, 존재 자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나는 유난히 작고 하얀 복영이를 매일 옆에 끼고 밥을 먹었다. 그동안 매일 네가 왜 좋은지 설명하며 애정 반찬을 먹였다.


"복도에서 나를 보고도 못 본 척 돌아설 때, 네가 씩 웃는 게 너무 귀여워서 어이가 없더라."

"수학 시간에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나를 골탕 먹이는 네 모습이 쥐어박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워."

처음엔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들로 시작했지만, 계절이 바뀌자 대화의 온도가 변했다.


"복영이가 준 사탕이 주머니에서 달그락거려.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 행복해 죽을 듯."

"아까 선생님 짐 들어주겠다고 했을 때, 선생님 너무 감격해서 몰래 눈물 닦았잖아."


복영이는 어느새 나의 가장 가까운 밥친구이자 단짝이 되었다. 아이의 표정이 환해질수록, 왠지 모르게 어린 시절의 나도 함께 위안을 받았다. 외로운 아이에게 누군가 온 힘을 다해 곁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 실은 나 자신을 구원하는 일이었음을 그때 알았다.


복영이를 가르친 그해는 정말이지 눈물 나게 힘들었다. 담배가 피부에만 나쁘지 않았어도 시작했을 것 같다. 스물네 살, 교사라는 옷을 꼬까옷처럼 겨우 걸치고서는 학부모와 학생과 수업과 업무와 동료교사를 상대하는 게 너무 버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복영이에게 제대로 된 첫 어른이 되고 싶어 힘을 쥐어짰다.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사랑과 보듬음을 쏟아부었다.


눈 내리는 운동장에서 복영이와 셀카를 찍었다. 카메라 속 복영이의 표정이 쌓인 눈처럼 희고 고왔다. 복영이가 비로소 가벼이 미소 지을 때, 내 안의 어린 서영이도 홀가분하게 따라 웃었다. 기어코 사랑해내야만 하는 아이는 아주 못되고 미운 소리로 도와달라고 말한다는 것을, 나는 복영이를 통해 배웠다.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 외딴섬 같은 아이, 어린 서영을 꼭 닮은 그 슬픔을 마주했을 때 나는 발목이 묶였다. 아이를 다독이고 일으키는 첫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주저 없이 뛰어들었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악착같이 버텨냈다. 나의 희고 고왔던 첫 마음은 그렇게 닳아가며 복영이에게 첫 어른을 선물했다. 첫 교사 꼬까옷을 입고 그 모든 무게를 견뎌냈던 그때의 서영이를, 나는 이따금씩 추억하고 존경한다. 그때의 서영으로부터 또 한참 멀어진 것 같아서.


- 아이의 이름은 가명이고 이야기는 각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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