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교사 생활 2년 차. 어디 가서 명함 내밀 만큼 대단한 수입은 아니어도, 내 몫의 빚은 성실히 지워나가고 있었다. 배낭여행을 가겠다며 친척 언니에게 빌린 200만 원을 갚았고, 엄마 순희를 위해 받았던 대출 1,000만 원도 다 털어냈다. 통장에 잔고라는 게 제법 쌓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어느 출근길 아침, 현관문을 나서려는 나를 순희가 다급히 붙잡았다.
"엄마가 사기를 당한 게 있어서 급전이 필요해. 어제 다리에서 콱 뛰어내려 죽을까 했는데 너네 생각나서 못 죽었어. 엄마 좀 살려줘. 너는 이자가 낮잖아. 대출 좀 더 받아줘. 매달 엄마가 갚을게. 약속할게."
순희는 스스로의 비극에 취해 뻘건 눈으로 흐느꼈다. 나는 또다시 순희의 구원자를 자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지금의 나라면 부모가 자식에게 죽음을 무기 삼는 것이 얼마나 치졸한 폭력인지 단번에 알았겠지만, 그때는 몰랐다. 내가 돕지 않으면 엄마가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은 당시의 서영에게 치명적인 독이었다. 나는 또 순희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모아둔 돈을 모조리 넘기고도 대출을 받으러 달려간 은행 창구. 차가운 유리 데스크 위에서 몇 장의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3,000만 원. 2년 차 사회초년생인 나에게는 짐작조차 잘되지 않는 무거운 액수였다. 그럼에도 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나는 내가 순희를 벼랑 끝에서 구원하고 있다고, 딸로서 마땅한 희생을 치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믿음에 금이 간 것은 대출금을 순희의 통장으로 이체하던 바로 그 찰나였다. 입금 확인을 하자, 순희의 붉던 눈에서 눈물이 거짓말처럼 말라붙었다. 그리고 스치듯 지나간 미묘한 미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려가는 기괴한 안도감을 마주했을 때, 등줄기가 싸늘해졌다. 그래도 설마 했다. 죽겠다는 말까지 입에 올린 엄마가 나를 속였을 리 없다고, 설마, 설마 하며 억지로 나를 다독였다.
바로 다음 달, 서늘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대출 이자와 원금을 상환해야 하니 약속한 70만 원을 달라는 내 말에, 순희는 돈이 어딨냐며 악다구니를 썼다. 다른 집 딸들은 척척 마이너스 통장도 뚫어주던데, 그깟 일로 부모 돕는 게 대수냐는 억지가 날아들었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 나는 철저히 붕괴되었다. 겉으로는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을 향해 웃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침몰했다. 또 속았다는 명백한 진실을 인정하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내 손으로 짊어진 3,000만 원의 무게보다, 나를 기만하던 순희의 그 미소가 뇌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았다. 기시감이 들었다. 악몽 같기도, 전생 같기도 한 익숙한 수렁이었다.
나는 곧장 독립할 집을 알아보았다. 왜 갑자기 나가 살려느냐고 묻는 아빠 재훈에게 그제야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아빠, 저는 엄마랑 같이 살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엄마랑은 이제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 너라도 나가 살아라."
재훈이 담담하게 말했다. 너라도 나가 살라고. 늘 묵묵히 일만 하며 어떻게든 이 가정을 깨지 않으려 버티던 사람. 아쉬운 건 내가 대출 서류에 사인을 하기 전, 이 무뚝뚝한 남자와 단 한 번이라도 상의했어야 했다는 점이다. 순희의 말만 믿고 재훈을 너무 끔찍한 사람으로만 몰아세웠던 건 아닐까, 그의 굽은 등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내가 독립을 위해 짐을 쌀 때, 순희는 마치 길거리에 버려지는 일곱 살 아이처럼 울고 소리 지르며 욕을 하다가 이내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나는 그저 순희라는 인간이, 그토록 오래 내 엄마였던 사람이 역겨워져서 더는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소음이 입을 다물기를, 내 인생에서 순희가 완벽히 증발해 주기를 바랐다. 지긋지긋한 구속과 조종의 사슬을 끊고, 그냥 나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순희는 나를 쉽게 놓아줄 위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