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아올 죽음을 기대하며

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by 엄서영

나는 여전히 엄마 순희의 전화번호를 차단해 두었다. 그날은 왠지 눈이 일찍 떠진 새벽이었고,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차단 메시지함을 열었다. 줄지어 쌓여있는 스팸 메시지들 맨 위에, 지칠 줄도 모르는 내 인생의 전속 스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카카오뱅크 9381, 농협 2938, 케이뱅크 3841. 혹시 모르니 알아둬, 미안해.'


​헛웃음이 났다. 죽겠다던 순희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중학생 딸 앞에서 네가 엇나가면 죽겠다던 순희, 사회초년생 딸 앞에서 돈을 안 빌려주면 죽겠다던 순희, 독립한 딸에게 돌아오지 않으면 죽겠다던 순희. 죽겠다던, 죽겠다던, 나 때문에 죽겠다던 순희가 아직도 죽지 않고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보내놓았다. 문자의 의도는 분명하다. 다시 연락을 시작하자는, 또 자신의 힘이 되어달라는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의 요청이다.


​순희의 명은 내가 겁먹었던 것보다 너무 길어서 허망할 정도다. 이 사람은 관짝 닫을 때까지 이러겠구나 싶었고, 나르시시스트는 남은 죽여도 자신은 안 죽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수십 년을 반복해도 절대 닳지 않는 지독한 자기 연민과 통제욕이 담긴 문자를 바라보며 나는 익숙한 혐오를 느꼈다. 이 모든 게 지긋지긋하다는 생각과, 이제 그만 완전히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마침내 찾아올 순희의 죽음을 기대하며.


​새벽의 서늘한 정적 속에서, 처음 순희와 연을 끊으려 발버둥 쳤던 그 시절의 소동들을 가만히 떠올렸다.


​독립이라는 방패는 생각보다 허술했다. 순희는 기어코 내 집 주소를 알아냈다. 순희는 공동 현관 앞에 찾아왔고, 누가 봐도 수상한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내게 문자를 보냈다.


​'동네 사람들 앞에서 창피당하기 싫으면 당장 기어 나와.'


​화면에 뜬 순희의 문자는 통보이자 협박이었다. 나는 결국 문을 열고 나가 순희의 차에 올라탔다. 차는 묵묵히 달려 어느 강변에 멈춰 섰다. 밀폐된 차 안에서 순희의 입이 열렸고, 날것의 폭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싹수없는 년, 쓰레기 같은 년, 개 같은 년.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년. 네가 조금 배웠다고 감히 엄마를 무시해? 니까짓 게?"


​침을 튀기며 쏟아내는 저주 속에서 나는 아득하게 현실 감각을 잃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지금까지 순희의 삶을 떠받치기 위해 나를 전부 바쳐온 나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나는 발가락 끝까지 경직되어 가쁜 숨을 헐떡였을 터였다.


​"너 같은 게 무슨 애들을 가르쳐. 교사할 자격도 없는 년. 당장 너네 초등학교 찾아가서 네가 어떤 년인지 다 까발려 줄까?"


​그 순간 나는 깊은 좌절과 슬픔을 넘어, 그냥 이 상황이 지독하게 좆같았다. 나를 다 갉아먹고도 모자라 사람들 앞에서 애써 웃어 보이며 어떻게든 떠받치고 있는 밥줄과 일상을 진흙탕에 처박겠다는 선언에 내 운명이 저주스러웠다. 내가 순희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얼마나 저질렀길래 순희라는 형벌을 치르고 있는 걸까. 해맑게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배부른 소리나 하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너희는 뭘 잘했고, 나는 뭘 잘못했을까.


​순희는 입버릇처럼 죽음을 무기 삼았다. 너까지 엇나가면 나는 죽는다, 돈이 없어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 했다며 매번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그 알량하고 폭력적인 죽음의 협박을 수없이 들어온 나는, 차창 밖의 무심한 강물을 보며 고요하고 서늘한 진심을 마주한다.


​순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순희가 죽었으면 좋겠다.


​나를 옥죄는 이 지겹고 질기고 엿 같은 인연의 끈을 끊어낼 유일한 방법은 그것뿐인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 나를 낳은 사람이 죽는 순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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