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엄마가 필요했을 뿐인데

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by 엄서영

나의 엄마, 순희는 자꾸 내게 빌었다.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울다가, 천륜을 끊어내려는 나의 비정함을 힐난하다가, 네가 엄마의 힘이 되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런 순희가 무척이나 지겨웠다. 순희가 내게 매달리던 그 시간을 버텨내기가 힘들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순희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내게 엄마는 순희뿐이었으니까.


나도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애틋한 엄마가 있었으면 했다. 착해진 순희를 엄마로 곁에 두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남들은 그저 태어난 것만으로도 귀한 존재가 되던데. 자기 자식이라면 껌벅 죽고,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성애를 쏟아붓던데. 왜 나한테만 그게 이토록 어려울 일인가 싶었다.


내게만 돈을 요구하는 줄 알았던 순희는,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손을 뻗은 상태였다. 어느 날 순희의 초등학교 동창 영숙이 여동생을 데리고 아빠 재훈과 나를 찾아왔다. 그들이 우리를 찾아온 목적은 명확했다. 대신 돈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평생 친구가 어렵다니 곧 갚겠다는 말만 믿고 돈을 내어준 사람들. 그들의 선하고 나약한 얼굴, 검소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는 옷차림이 불쌍하긴 했다. 그런데 영숙이 내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했다.


"돈이 너무 급하다고, 교사인 딸한테 해달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니까 금방 딸이 해준다고 했다고..."


헛웃음이 났다. 돈을 빌려줄 땐 내게 묻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왜 나한테? 어리석게 속아 넘어간 당신들의 빚을, 사기꾼이 내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갚아줄 거라 기대하는 걸까. 불쌍해 보이던 그 선하고 초라한 사람들에게 일순간 분노가 치밀었다.


명백한 피해자들인데도 그랬다.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멍청해서 속아 놓고 대체 누구한테 와서 갚아달라는 거냐고, 소리 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내 엄마에게 당한 사람들을 도리어 힐난하고 깎아내리는 꼴이라니. 선한 눈망울을 깜박이는 피해자들을 비난하다 되려 지독한 자기혐오가 밀려왔다. 나도 저들도 다 피해자일 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가혹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


나는 아무에게도 가해한 적이 없는데, 가해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을 원망하며 내 밑바닥의 악의를 마주하게 되는 것. 그것이 가해자의 딸로 태어난 내가 치러야 할 형벌이었다.


십중팔구 도박이었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한껏 들떠 있던 날의 순희는 돈을 딴 것이었고, 눈이 시뻘게져서 돈이 필요하다고 울던 날의 순희는 돈을 잃은 것이었다. 지나온 기억의 퍼즐을 맞춰보니 그랬다. 순희는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썼고, 한 방이면 다 메꿀 수 있을 거라 믿었겠지만 그런 기적은 순희의 팔자에 없었다.


다시 같이 살자고, 엄마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이제 정말 정신 차리고 살겠다며 애원하는 순희를 모질게 끊어내지 못한 채 이따금 문자를 주고받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300만 원만 보내줘. 급해.


또 그런 문자가 왔다. 또. 또. 또.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쏟아지는 교실은 이질적으로 평온했다. 복도 너머로는 출근하는 동료들의 가벼운 발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구김살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제법 윤택하고 여유로운 사람들. 그들과 나는 같은 교사였지만, 나만 홀로 시궁창을 구르고 있었다. 다들 먹고살기 팍팍하고 가족 때문에 지쳐 있다면 차라리 덜 외로웠을까. 온전하고 무해한 세상에 나 혼자만 이물질처럼 섞여 있다는 감각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행여나 시뻘게진 눈을 보고 누군가 무슨 일이냐고 다정하게 물어볼까 봐, 나는 서둘러 표정을 지우고 한없이 차가워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고요한 아침의 정적 속에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는데, 오랜만에 훅 죽고 싶어졌다. 지겨웠다. 지겹고 지겨워서, 이 모든 게 끔찍하게 지겨워서 죽고 싶었다. 아프지 않게 죽는 방법이 있다면, 아니, 주변 사람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사라지는 방법이 있다면 진작에 나를 지우고 증발시켰을 것이다.


-돈 갚을 때까지 당신이랑 상종 안 합니다.


답장을 보내고 300만 원을 송금했다. 안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다. 삶에 대한 애착도, 내가 번 돈에 대한 의욕도 완전히 바닥난 상태였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만큼 나를 망가뜨리고 주저앉혀 봐.’ 그런 자포자기였다.


나는 순희의 번호를 차단하고 거처를 옮겼다. 순희를 향한 남은 감정의 밑바닥까지 모조리 다 긁어 털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순희에게서 돌아섰다.


나는 그저 엄마가 필요했을 뿐인데, 그게 내겐 너무 과분한 꿈이었다. 내 팔자엔 엄마라는 게 없다는 걸 그제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다른 엄마들을 부러워하면서. 자꾸만 서러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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