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히 불행한 사람

엄마를 끊어내기로 했다

by 엄서영

다수 앞에서 소수가 된다는 것.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게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데, 내 주변은 죄다 고만고만하게 화목해서 나는 자주 입을 닫았다. 모성애나 가족의 온기가 당연한 듯 대화의 식탁에 오를 때면, 어색함을 들키지 않으려 웃었고 적당한 리액션을 찾아 헤맸다. 나만 이런 건 아닐 텐데, 세상은 도통 내 몫의 불행을 보여주지 않았다. 인터넷 검색창에 '나르시시스트 엄마', '불행한 가족' 같은 키워드를 처넣고서야 나와 닮은 얼굴들을 겨우 마주했다. 모두가 불행한 세상이라면 내 불행도 견딜 만할 텐데, 남들의 풍경은 너무나 평온해서 나는 자꾸만 외로웠다.

혼자 살기로 결심했을 무렵, 나는 내가 유기견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떤 개들은 예쁜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질 좋은 사료를 먹지만, 어떤 개들은 홀대받고 버려지며 때로 매를 맞는다. 나는 후자였다. 정확히는 학대받다 버려진 개. 때 묻은 몸으로 겨우 누울 곳을 찾아 주저앉은 지친 짐승.


​어떤 밤에는 외로움이 턱 끝까지 차올라 숨이 가빴다. 이 허기를 채울 길은 연애뿐인 것 같아 기를 쓰고 누군가를 찾았다. 내 불행과 결핍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상대들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이 애가 얼마나 외로운지, 아주 작은 친절에도 배를 발라당 까버리는 버려진 개 같은 구석이 있다는 걸. 함부로 대해도 좀처럼 도망가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금세 알아본다. 익숙하지 않은 가짜 사랑은 어색하기 마련이니까. 반면 사랑을 구걸해 본 적밖에 없는 사람은 사랑도 아닌 부서진 사탕 조각 하나에 감격한다. 그게 보상인 줄 알고, 이제야 행복의 궤도에 진입한 줄 알고 기꺼이 목줄을 상대의 손에 넘긴다. "이제 마음껏 나를 끌고 다녀도 돼." 주도권을 넘겨준 채 나는 사랑을 달라며 헉헉거렸다.


​상대는 종종 내게 무리한 요구를 던졌다. "네가 좀 더 날씬했으면 좋겠어."라거나 "조금만 더 예쁘면 완벽할 텐데." 같은 말들. 정상적인 궤도에서 사랑받고 자란 이들이라면 단박에 무례함을 간파했을 그 말들이, 내게는 정성 어린 조언처럼 들렸다.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 상태인지 배워본 적 없는 내게, 타인의 지적은 곧 나를 향한 관심의 증거였다.


​나는 기꺼이 그 요구에 휘말렸다. 지금의 나를 미워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평생을 해온 일이었으니까.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는 '다음의 나'가 되기 위해 기어이 살을 깎고, 성형외과 견적을 고민하며 스스로를 수선하려 했다. 나를 망가뜨려 상대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더 많이 사랑받을 방법이라고 믿었다. 내 몸이 축나고 마음이 문드러지는 줄도 모른 채, 나는 나를 지우고 상대가 원하는 인형이 되어갔다. 나를 파괴하고 삭제하는 것. 내겐 익숙한 사랑의 방식이었다.


​어떨 땐 질질 끌려다녔고, 함께 있어도 여전히 외로웠으며, 마음이 아니면 몸이 부서졌다. 한평생 불행이 기본값이었기에 나는 어쩌면 불행한 상태가 가장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오히려 낯설고 불편했다. 불행은 내게 너무 오래된 친구였다. 잠에서 어렴풋이 깨어나는 순간부터 나는 자연스럽게 불행을 감미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나를 꿈꿨으나 행복은 내게 상상 속 유토피아 같은 것이었고 실체가 없었다. 나는 나의 오랜 불행이 지겨웠고, 정확히는 내가 지긋지긋했다.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서늘한 생각을 종종 했다.




제가 글을 올리면 짧은 시간 동안 '좋아요'를 후두둑 눌러주시는 분들이 계셔요. 그리고 어느새 제 계정을 구독해 주신 분들도 500분이 넘었어요. 지독히 외로운 밤에, 나만 혼자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버겁고 억울해서 글로 쏟아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면서도 엄마를 끊어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에 대해 윤리적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있었는데요, 저 대신 화내주시거나 슬퍼해주시는 댓글들을 보면서 엄청난 위안을 받아요.


최근에 브런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요. 댓글에 꼭 성의 있게 답글 달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저에 대해 변명하고 싶고요. 앞으로는 더 성의 있게 소통해 보려고 노력할게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요.

글 읽어주시는 분들, 좋아요 눌러주시는 분들,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든 분들께 무척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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