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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Apr 15. 2018

사과농부의 일과 쇼생크 탈출

몸으로 일하기


아침에 눈을 떴는데 빗소리가 들린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자고 싶으면 더 자도 된다. 

밖은 춥고 바람 불겠지만 따뜻한 침대에서 편안함을 만끽해도 된다.

-비 오는 날 이부자리에서 개기기, 몸으로 일하는 농부의 즐거움 중에 하나다.


차제에 몸으로 일하는 것의 좋은 점을 생각해 본다.


-익숙해지는 것은  똑똑해지는 것보다 쉬운 일

이사를 온 11월 초, 전 주인이 색이 덜 든 사과를 주고 갔다.

사과를 얻은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일기예보는 4일 후엔 영하 5도로 추워진다고 했다.

주변에서 4일 이내에 사과를 따야 된다고 했고 이웃집에서는 두 분이 반나절을 도와주시기 까지 하셨다.

마나님과 며칠을 중노동 한 덕에 수확을 간신이 끝냈다.

사과일은 원래 힘쓰는 일이 별로 없지만 수확 때는 힘쓰는 일이 전부다, 특히 기계가 없을 때는.

매일 저녁 우리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일주일 후에 서울로 올라가는 마누라가 내게 말했다.

'나는 쇼생크를 탈출하는데 당신은 어떡할래? 정말 큰 일이다'

그때는 나도 마누라가 부러웠다, 마치 논산 수용연대에서 귀가하는 장정을 보는 
그런 느낌.

그러나 시간이 지나 한 순배가 돌면서 일들이 몸에 익기 시작했다.

아니 몸에 익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고 기본적인 장비가 갖추어지니
일들이 한결 쉬워졌다.

몸이 배우는 것이 머리가 배우는 것보다 쉽다.


- 아 좋다! 와 아이C.
농부가 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을 때이고 이런저런 스트레스로  '아이 C'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다.

환경이 바뀌어 농사를 시작하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나 작은 꽃들,  

신선한 공기를 의식하면서 ' 아 좋다!' 가 저절로 나와서 나 자신도 놀랐다.


- 어떤 이는 데모도(기능공 보조)  10년을 해도 데모도지만, 어떤 이는 3-5년 만에 기술자가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과의 큰 선생인 신 선생이 한 말이다.
사과를 하기 전에 건축사로 현장에서 일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이는 

몇 년을 가도 똑같은 데모도지만 어떤 이는 단 기간에 기능공이 된다며 

농사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농사일에서는 약간의 머리 운동이 효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어 몸이 편해진다. 


-농사일의 큰 약점은 춥던 덥던 야외의 작업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작이 힘들지 막상 시작하고 나면 보는 것만큼 힘든 일이 아니다. 

6월 하순의 뜨거운 햇빛 아래  고소작업차를 타고 가지유인 작업을 

하면서 여름에 산에 오르는 것보다는 수월 타는 생각을 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단순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저 작업만 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다. 

단순 육체노동이 몰입을 하게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본 일이다.

레드가 찾아온 앤디의 천국

주위의 친구들도 가끔 몸으로 할 수 있는 힘들지 않은 일에 대해 얘기들 한다.
물론 말만 하면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그것이 안되면 즉 내 사업체가 없다면 몸으로 때우는 것이 의외로 스트레스가 적다.


쇼생크를 탈출한 앤디 듀프레인( 팀 로빈스)과  그를 찾아온 레드의 

파라다이스도 멕시코의 한 해변가 뙤약 빛 아래에서 배를 수리하는 일이었다.
몸으로 일하기 즉  익숙해지는 것이 쉬운 일이라는 것은  마누라에겐 쇼생크였던 
사과밭이 지금의 내게는 앤디의 멕시코 해변가와 동급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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