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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y 12. 2018

민들레 함부로 보지 마라.

5월 2주 차 농사일지

생각을 바꿨다.

어차피 수확하고 저온창고에 입고시키는 11월 초순까지 쌓이고 쌓인 것이

할 일들인데 적과 및 유목 관리가 아무리 급해도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운동에 쓰기로 했다.

해야 하는 일들의 시한이 정해져 있는 것이 농사일이라  눈 만 뜨면 과원으로 나가며 적과가 마무리되면 산행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다.

길게 보고 가려면 시급하지 않게 보이지만 실제는 중요한 건강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 게 맞는다.

주초에 얼마 되지 않는 계단에 피로감을 느끼면서 충격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또 이제 10장 중 1장을 읽은 " 운동화 신은 뇌 (Spark Your Brain), 존 레이티. 에릭 헤이거먼 지음, 이상헌 옮김, 녹색지팡이 발행)"의 영향도 크다. 

'아침에 0교시 체육수업으로 격렬한 운동을 통하여 두뇌를 학습에 적합한 상태로 만든다'는 내용.


내 몸은 내 의지, 희망, 정신적인 착각과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산책이나 산행으로 걸은 것은 운동으로, 과원에서 일하며 산책보다 더 긴 거리를 걸어도 그것은 일로 즉 노동으로 정확하게 계산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매일을 만보 이상 걷는다고 아이폰은 알려주지만 내 몸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일과 운동의 명확한 판단은 그가 한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다시 아침에 뒷산 다녀오기를 시작했다.

약 3km를 50분 정도 걸리는 코스로 작년 7월 이후에 중단했었다.


소나무 우거진 명품산책코스가 바로 뒤산인데 .. 아침해가 비춘 내 그림자는 비틀거리지 않는다.

이번 주의 스케줄은 산책이 끝나면 아침 식사 전에 한 시간 정도 예초기로 사과나무 두둑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다.

줄과 줄 사이의 열간은 초생재배가 즉 어느 정도의 잡초 등 풀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 학술적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는 풀이 없는 것을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나무와 사람에  해가 없는 제초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는 그냥 풀을 열심히 깎기로 하였다.

시간이 훨씬 많이 필요한 결정이지만 그것이 내가 편하다.

작년에 갱신한 유목과원은  차광막을 이용하고 있는데 지온이 어느 정도 오르는 6월 전까지는 차광막을 깔지 못하여 제초가 필요하다.

우리 밭의 제초 작업은 3단계로 우선 관리기에 달린 외날 제초기로 두둑 근처를 깎고 트랙터에 제초기를 달아 열간을 깎은 후에 예초기로 나무 가까운 곳의 제초를 하는 과정이다.

예초기를 메고 하는 작업이라 힘도 들고 또 교과과정의 다양화를 위하여 매일 조금씩 나누어하는데 예초기 작업은 트랙터 예초 후 일주일 정도 지나서 하게 되기도 한다.


민들레는 사과나무의 수분 시기부터 경쟁적으로 피는 꽃인데 대부분이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로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꽃씨를 날려서 잠깐 손 놓으면 민들레 밭인지 사과밭인지 헷갈리는 밭을 많이 봤다.

올해 유난히 사과 개화에 비해 민들레 개화시기가 늦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단서를 찾았다.

"나무수업, 페터 블레벤 지음, 장혜경 올김, 이마 발행"에 의하면 '싹은 지난겨울이 추웠을수록 더 빨리 세상 구경을 한다. 뮌헨 공과대학 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테스트하여 알아낸 사실이다" P188-189.

작년 겨울이 좀 추웠고 올해 사과꽃의 개화가 예년보다 3-4일 빠른 것을 보면 수긍이 가는데 추운 날씨 덕에 사과나무가 겨울잠을 달게 잤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다행히 수분 시에는 민들레의 방해를 덜 받았지만 민들레는 그의 시간대로 온통 사방을 민들레 밭으로 만든다. 그때가,  민들레꽃이 여기저기 만발할 때가  제초의 적기다. 일망타진!!


혹 민들레가 완전히  없어질까 봐 걱정이 된다면 안심해도 좋다.

그들은 제2, 제3의 특공대가 늘 준비되어 있다.

좌측의 민들레를 예초기로 자르면 중간의 넓게 퍼진 밑단이 나오고 계속 자르면 우측의 사진처럼  그들의 준비된 미래 (크고 있는 꽃)가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트랙터의 제초기가 지나간 곳의 민들레는 다시 꽃을 피우는데 절대 고개를 높이지 않는다.

줄기를 땅으로 깔아 키를 낮추고 꽃씨가 준비가 되면 그때야 키를 높인다.

좌측의 민들레는 제초기 경험이 없어서 꽃대도 꽃씨도 높지만 우축은 제초기의 경험이 있어 몸을 한껏 낮췄다.

어찌 보면 외부의 공격으로 에너지가 소진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식물은 햇빛을 받기 위하여

주변의 식물들과 경쟁하는 것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의 키 높이를 어느 정도 인지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보는 눈이 있다는 것. 

그래서 모두 낮은데 나만 모난 돌이 되어 정 맞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 몸을 낮춘다고 생각하면 억지일까?

자기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너무나 다른 민들레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민들레도 주변을 인지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며 살아가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어찌 민들레 뿐이겠는가?

모든 생물이 다 그럴 것이다.

"식물의 정신세계" 나 "의식혁명"등의 책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든 만물의 정령을 생각하는 원시종교가 나름의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관점에서 내가 과원에서 하고 있는 작업이 근본적으로 사과나무에게 좋은 일이고 내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에  그들의 묵시적 동의가  필요하다는 생각하게 된다. 

작업의 필요성과 내용을 설명하는 과정과 더불어서.

한번 설명하면 그들이 동료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가끔 혼잣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연탄재만 함부로 볼게 아니라 민들레도 절대로 함부로 볼게 아니다.

함부로 보진 않겠지만 나는 내일 아침에도 예초기를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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