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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y 06. 2018

4월 사과밭 일지

착과 완료, 적과 시작

독서모임에서 할당받아 다시 읽은 '사랑의 기술"에서 눈에 번쩍 뜨이는 구절을 만났다.


"농부가 곡식을 기르든지, 화가가 그림을 그리든지 간에, 모든 형태의 창조적 작업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 대상은 하나가 되며 인간은 창조 과정 속에서 자신을 세계와 일치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오직 생산적인

작업에만 적용된다. 즉 내가 계획하고 내 작업의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육체적으로는 지금까지 해 온 일중에서 가장 힘들고, 작업환경은 냉난방이 엇박자로 제공되고,

보상면에서도 비교가 안되게 작고, 심지어 의식주를 혼자 해결하기까지 하지만 심리적 만족감은

어찌 보면 가장 높은 듯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명쾌히 설명한 것으로 이해하였다.

일 할 땐 힘도 들지만 일단 일을  끝내고 결과를 보면 흐뭇한 것이 농업이다.

일 년이 지나 수확할 때뿐만 아니고 매 작업의 결과가 대개는 즉각적으로 눈으로 보이거나 비료 시비 등은

시간이 좀 지난 후에 결과로써  드러난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을 세계와 일치" 시키는 것으로 표현했지만 결국 결과물의 확인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농부- 농업을 '창조적 작업'으로 분류한 것은 농부인 나도 긴가민가한다.)


4월은 본격적인 사과농사를 시작하는 달로 인공수분, 잡초의 꽃 제거 등의 착과 관리와  병반 있는 나무의 

관리 등이 주를 이룬다.



착과- 적과로 이어지는 열매의 선정 부분은 농부가 능동적으로 한 해의 수확을 그리는 부분이다.

꽃은 나무가 피우고 수정은 벌 등이 하면 (물론 인공수분도 하긴 하지만) 열매가 맺히는데 농부가 

할 일이 뭐가 있겠나 싶겠지만 달려있는 과일 중에서 대표를 선발하는 것은 농부의 몫이다.


일단 열매가 선정되어 나무에 자리를 잡으면 농부의 일이란 물 주기 비료주기 방제하기의 수동적

관리형 태만 남게 된다.

사과꽃은 한 꽃눈에서 5-6개가 순차적으로 꽃을 피우는데 제일 먼저 핀 중심화에 사과가 맺혀야 

좋은 사과가 나온다. 목표는 중심화만 수정시키고 나머지를 되도록 빨리 정리시키는 것이다.

중심화에 맺힌 열매라도 달린 위치에 따라 또 서로 간의 거리에 따라 적적하게 열매 수를 유지하는 것은 

나무를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선발과 탈락은 지극히 자연적인 일로서 잘 만들기 위해서 버리는 것을 잘 해야 한다.


가운데 유난이 굵어 보이는 꽃이 수정된 꽃이고 나머지는 곧 시들어 떨어진다.

또 벌 등의 매개곤충이 사과꽃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잡초의 꽃들을 정리해 주는 것도 농부의 일이다.

대개는 사과꽃 수정할 때에 과수원 바닥에 민들레꽃이 지천으로 피어 매개곤충이 그리고 향하지 못하도록

민들레를 제거하기 위해 제초를 하는데 올해는 사과꽃이 민들레 전성시대보다 훨씬 빠르게 꼬을 피웠다.

식물의 작동원리에는 적산온도가 중요한 의미가 있어 그를 기준으로 식물들이 움직이는데 올해 민들레의

개화가 늦은 이유를 알면 대처방법이 나올 텐데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

민들레 꽃씨 날리기는 예전에는 봄철에 있는 한 번의 이벤트였는데 지금은 외래종이 주종을 이루어 수시로 꽃씨를 날린다. 사과꽃 개화기에도 뿌리를 제거하지 않는 한 대기 중인 꽃들이 무시로 피어난다.

민들레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토종은 작고 왜소하고 번식력도 낮은 것이 공통사항인데 그 와중에도 꿋꿋이 

버티며 개체수가 늘어나는 토종 흰민들레가 고맙다.


흰색은 토종으로 총포가 올라가 있고 노란 외래종은 총포가 내려가 있다.


한때 대구일원이 사과의 주산지였던 때가 있었는데 따뜻해진 날씨와 더불어 부란병이란 사과나무의 병으로 

나무가 감소하여  생산이 급감하였다고 한다. 

우리 과원의 나무도 18년째로 밀식재배에서는 할아버지 급으로 점점 부란병에 취약해져 간다.

그동안에는 병반이 있는 나무를 발견하면 그 주위를 깎아내고 약을 발라주는 마이너스 요법을 실시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물관과 체관이 있는 껍질 부분이 점점 축소되어 결국에는 고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귀찮기는 하지만 약제오 같이 진흙을 개겨서 덧발라주는 플러스 요법을 시행해보기로 하였다.

진흙을 개어 나무에 바르고 비 오는데 대비하여 발수 페인트를 도포하는 일에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었지만

처음 해보는 프러스 치료법에 나무가 호응해주기를...


이제 5월은 본격적인 사과 선발기간으로 되도록 빨리 올해 수확할 사과의 120% 정도의 대표선수를

선발하는 중요한 기간이다.

적절한 적과 인원의 수배가 핵심인데 이미 첫 작업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미뤄져 맘이 바쁜데 올해는 작년에 

심은 나무들의 수형구성과 겹쳐서 바쁘게 빨리 가는 한 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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