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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un 03. 2018

Lazily Drifting과 위이(委蛇)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Lazily drifting 이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지금은 오래된 가수 클리프 리처드의 Visons라는 노래를 통해서였다.

Visions of you in shades of blue Smoking, shifting, lazily drifting
My darling, I miss you so.

이렇게 시작되는 그의 노래에서 천천히 떠다니는 것은 담배연기다.

지금은 아파트도 금연아파트가 생길 정도로 혐오하는 것이지만 예전엔 담배연기 자욱한 음악다방에서 공중에 떠다니다 엷게 스러지는 담배연기를 보며 많이 들었던 노래다.

아, 리처드 클리프가 처음 내한한 1969년도에는 공항 마중 나간 팬들의 행태에, 또 이대 대강당에서 가진 그의  공연에서 보인 반응에 "수라장"이 된 공항, "광태" 혹은 "광기"어린 반응이라고 신문이 표현했었다.

약 30년이 지난 지금은 담배와 "팬들의 반응"의 위치가 정확히 반대가 되었다.

정상인 담배는 비정상으로 "광기 어린" 팬들의 행태는 정상적으로.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보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천천히 걸으면서  보는 것이다. 걷는 것이 가장 느린 이동수단인데 가장 느린 이동수단이 가장 많이 보게 되고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 같지만 당연한 일이다. 지도를 손에 들고 (지금은 구글맵을 키고 걷지만) 걸었던 길은 10년 뒤에 가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1년에 서너 번을 가도 차 타고 간 곳은 도착해서야 안다.


좋은 코스의 트랙킹이나 익숙한 동네길의 산책길에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니면 많이 보고 많이 느낄 수 있다. 나의 시간도 그렇게 천천히 떠다니는 듯 지나가게 하고 싶다.

봉화에 내려와 사과 농부가 된 지 5년째가 된 지금은 내게는 어느 정도는 천천히 가는 것 같다.

첫 2-3년간은 서울에서와는 달리 수시로 행복하고 가끔 허전했었다. 그 무렵 서울 집에서 본 K팝 스타 시즌4의 정승환이 부른 '사랑에 빠지고 싶다"의 가사가 마음에 닿았다.


사랑에 빠지고 싶다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영화도 챙겨보곤 해 

서점에 들러 책 속에 빠져서 낯선 세상에 가슴 설레지 

이런 인생 정말 괜찮아 보여 난 너무 잘 살고 있어 

헌데 왜 너무 외롭다 나 눈물이 난다 

내 인생은 이토록 화려한데 고독이 온다 

넌 나에게 묻는다 너는 이 순간 진짜 행복 하니.....


난 너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딘가 비어있는....


결국은 "서울"빠지고 싶은 것이었다. 지나온 삶의 모든 것이 남아 있는 "서울"에.

정확하게는 "한참 전성기 때의 서울"로.


다행스럽게 농사일은 시간에 맞춰해주어야 하는 일이어서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다 보니 4년이 훌쩍 지났고 이제 어떤 일을 왜 하는지 조금씩 감이 오게 되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더 '잘 살기 위해서"  걷기 모임과 고전 읽기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위이(委蛇)는 장자 서무귀(莊子 徐无鬼)편에 나오는 말인데 맡길 위(委)와 구불구불 갈 이(蛇-긴 뱀 사와 같은 글자)로 "자연의 순리에 맞게 사는 모양"으로 해석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는 것 = 순리대로 사는 것, 금방 이해가 되는 말이요 그림이다.

길 따라 보는 위치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고 내가 있는 곳이 다른 곳 임을  아는 것이 "위이"다.

기원전 300년경의 장자시대나 지금이나 산다는 것은 직선의 탄탄대로를 질주하는 것만이 아니고 때로는 구불구블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보면 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길 따라 흐르는 시간따라 Lazily Drifting 하면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느끼는 것이 "위이"고 그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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