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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Oct 07. 2018

사과의 "무림 비급"을 찾아서

 더  멋진 사과를 만드는 비결(秘訣)이 있을까?

우리 사과밭의 수확은 8월의 쓰가루 (아오리)로 시작하여 9월의 홍로 및 조생 부사 그리고 10월 하순의 부사를 끝으로 마무리가 된다. 수확하면 천재지변이 없는 한 활짝 핀 미소를 띤 농부의 사진과 함께 "수확의 기쁨" 운운하는 신문기사가 일반적인 정서다. 수확 자체는 좋은 일이다. 그러나 농부에겐 한 해의 성적표를 받는 일 이기도 하다.  예전 성적표를 받던 때와는 사뭇 '다르게'  기쁨보다는 후회와 아쉬움이 더 많다. 어쨌든 더 쉽게 더 좋은 사과를 만드는 비책에 대한 갈구는  끝이 없어서 "뭐가 어디에 좋다더라"라는 카더라 통신도 일단 소식을 접하게 되면 그렇지 않다는 객관적인 증빙이나 주관적이 신념이 없다면 한 번은 따라 하게 되는 것이 농사다. 


까나리액젓, 바닷물(표층수), 해양심층수, 막걸리, 에탄올, 설탕, 소금.

어디에 쓰이는 것들이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해답은 사과의 착색을 촉진시키기 위한 보조제로 경험 많은 이들의 민간처방 재료이다.  보조재료로 쓰이는 설탕을 제외하면 나머지 종류들이 주처방제로 어떤 이는 까나리액젓을 또 어떤 이는 바닷물을 사용한다. 또 에탄올(알코올)과 막걸리를 제외하면 나머지 까니리액젓, 바닷물, 심층수와 소금은 염분과 각종 미네랄 함유라는 공통분모가 생기고 막걸리와 에탄올은 알코올이 공통분모가 된다.

위의 재료들은 착색과 관계된 안토시아닌의 생성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나무에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착색이 잘된 사과를 선호하는 판매구조 덕분에 사과의 맛이 왜곡될 염려가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수확 한 달여를 남기고 가장 중요한 일은 착색과 관계된 일들이다. 사람을 동원하여 사과에 붙은 잎들을 따주고 바닥에 은박지를 깔아서 빛을 더 받게 하고 심지어 사과를 살짝 돌려서 골고루 빛을 받게 하는 모든 일들이 한 해의 최종 성과를 결정짓는 착색을 위한 일이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다. 사과에 봉지를 씌웠다가 수확 전에 벗겨서 일시에 빛을 받아 착색하는 방법이나 혹은 "에틸렌"이라는 생장조절제가 함유된 착색제를 치면 노화가 촉진되어 발색이 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맛이 떨어지거나 경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 자연적인 착색을 촉진하는 방법을 선호하며 그 결과로 전술한 사과농사와는 전혀 관계없게 보이는 재료를 쓰게 되는 것이다.


나는 작년까지는 안동대 전 교수님이 추천해주신 비료와 설탕 그리고 바닷물(표층수)을 쓰다가 심층수가 좋다는 사과마이스터과정 동료의 추천으로 동해시의 심층수 공장에서 해양심층수를 받아와서 쓰고 있다. 

효과는? 작년과의 차이점은?

잘 모른다.  사실 착색의 가장 큰 요소는 어떤 재료를 보조제로 쓰느냐가 아니라 기온의 변화다.

주야간 온도와 그 차이가 사물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작년에는 전체적으로 착색에 애를 먹었는데 나중에 봉화약용작물연구소의 서박사 님이 수확기의 주야간 적산 온도차가 눈에 띄게 낮아서 약초 수확에 애를 먹었는데 사과도 착색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젠장, 농부가 주야간 적산온도 차이까지 감안하고 농사를 지어야 하니 농사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동해시까지 가서 200리터 한 드럼의 해양심층수를 가져왔다.

착색촉진보조제이긴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해양심층수가 도움이 안 된다는 증거나 문헌이 없고 도움이 된다는 경험자가 있으니 안 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간단하게 병에든 영양제 혹은 복합비료가 무림 비급의 처방약으로 둔갑하여 높은 값에 팔리며 농민을 우롱하는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2만 명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으며 농민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흙과 비료와 벌레이야기" 밴드를 운영하는 제주대 현해남 교수님은 그러한 약제들은 수천-수만 배의 바가지를 씌우는 장사라며 경계하라고 하시지만 내 주위에도 몇백만 원의 영양제를 "비급"의 처방전으로 사고 속을 끓이는 이들이 있다.

예전의 농사와 SNS시대의 농사

급격히 떨어진 출산율과 인구구조의 변화 그리고 늘어 나는 평균 생존연령으로 지금은 노인에 대한 예우를 따질 상황이 아니게 돼가긴 하지만 예전 농경시대의 노인에 대한 예우는 결국은 먹고사는데 필요한 노인의 경험에서 얻은 암묵적 지식에서 기인되었을 것이다. 말로 모건이 쓰고 류시화가 옮긴 "무탄트 메시지"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호주의 참사람부족과 함께 호주 황무지를 횡단하는 여정을 서술한 책인데  부족 최고의 결정권자는 나이 많은 여성이다.  그녀는 어디쯤에 물이, 먹을 것이 있는지를 알고 있어  부족의 안녕이 그녀의 지식과 판단에 직결되어 있다. 우리에겐 강력한 유교의 영향도 있겠으나 농사가 주요 산업인 시절에 경험자의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경험자의 입장에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놓아 자신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인지 오래 농사를 지은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고 토로하는 귀농인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대개는 잘 가르쳐 주시는데 문제는 그런 암묵적 지식들이 전달되는 범위가 너무 좁다는 데 있었다. 

지금은 SNS 시대로 카톡으로, 밴드로 소통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10명의 작목반원이 카톡을 통하여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면 1년은 10명에게 10년 농사의 간접경험을 가능하게 만든다. 1년 농사를 짓지만 10년 지은 경험을 갖게 된다. 내게는 처음 생긴 문제이지만 다른 이에겐 이미 발생했던 문제라면 해결책이 쉽게 나타난다. 간접경험이란 소위 "기출문제집"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전술한 착색 보조제도 작목반 카톡을 통하여 각자가 입수한 착색 보조제 공식을 종합한 것이다. 주재료에 따른 각기 다른 제조방법과 함께. 이렇게 사과재배 전반에 대한 여러 문제나 상황을 공유해 나간다면 사과재배에 있어서 아주 충실한 "기출문제집"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곧 "무림 비결"일 수도 있다.

비결을 얻는 방법을 알았으나 작목반원 35명의 열성적인 참여로 가능한 일이라 쉽지가 않다. 하여 일단 착색 혹은 적과 같은 손이 많이 가거나 중여한 이슈에 관계된 팁이나 처방을 모으고 있다. 시간이 가며 내용이 보강되면 우리 나름의 "비결"이 되리라 믿는다.


"비결이 있으니 사과농사는 내 손안에 있소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절대적으로 아니다"이다. 아는 것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농사는 아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는 것 즉 행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행복을 찾아 긴 시간 먼 길을 헤메 다니다 돌아와서 행복이 내가 있는 이곳에 있었다는 어느 얘기처럼 결국 비결은 SNS를 통해 축약된 간접경험이나 처방이 아니라 과원에 투입된 나의 노력과 손길이다.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손을 본 나무가 더 좋은 사과를 만든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똑같다. 

나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결과를 얻는다. 

당장은 아닐 수도 있다, 많이 투자했지만 건질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실패도 자산이다. 어느 야구선수도 마운드에 설 때마다 안타를 칠 수는 없다.

부단한 학습과 노력. 때가 오면 빛날 나를 위해.

이것이 비결이다, 하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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