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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Oct 07. 2018

전직 5년 차, 사과농부

사과 농부가 되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조지 버나드 쇼                                                               

" 비틀거리는 걸음 앞에 길고 긴 내 그림자" - 임희숙 노래 '잊혀진 여인'

33년의 직장생활을 정리할 무렵부터 머리에 맴돌던 말과 노래 가사.


친구들과 한잔 한 후 귀갓길의 가로등에 비친 내 그림자는 왜 그리 긴지, 잘못하면 이제껏 살아온 날들의

50%까지도 살 수도 있다는데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사업소재도 마땅치 않고 기술도 없고 자금도 충분치 않고, 없는 것은 많고 있는 것은 시간과 의욕뿐.

평소 좋아하던 야생화 사진 찍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먼 산 중턱에 외딴집을 보며 생각했다.

"비교적 소자본으로 지속 가능한 생산을 할 수 있다면 농업이 평생직장이 될 수도 있겠네".


농업법인을 갖고 있는 친구가 농장의 땅과 온실을 빌려줄 테니 시험 삼아해 보라는 격려와 지원을 해주어 당장 시작하기로 하였다.  우선 농업기술센터를 찾아가 나 같은 도시 출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이 무엇이 있는지를 살폈으나 마땅한 품목은 없었고 대학옥수수씨앗 한 봉지를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에 2-3일 농장에서 묵으며  직원의 도움을 받아 60평 땅을 로터리로 갈고 대학옥수수 씨를 발아시켜 옥수수 묘를 만들고 비닐로 둔덕을 덮어 460주의 옥수수를 심는데 2주일이 걸렸다.  허리와 다리에 오는 고통이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 이런 농사는 내 선택이 아닌 것으로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다.

어느 날 옥수수에 물 주러 가서 점심을 먹으러 읍내에 다녀오는 길에 친구가 본 플래카드, 

" 도시민 과수창업교육".


과수라면 서서하는 작업일 것이고 생산성 면에서 일반작물보다 나은 것으로 생각되어 여주농업전문학교에서 주관하는 8주 합숙 코스 "도시민 과수창업교육과정"에 입학하였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등 4 품목을 대상으로 코스 수료 후 1000평 정도의 자기 과수원을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는 담당교수의 인사말을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 그래 자고로 꿈은 크게 가져야지". 

24명의 과정생들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기숙사에 있으며 이론과 실습과정을 거치고 주말마다 하루는 집에서 쉬고 일요일에는 사과를 희망하는 과정생 몇 명과 잘 한다거나  혹은 유명한 사과 과수원을 찾아다니며 8주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재미있게 지나갔다.  또한 과정 초반에 강의를 해주신 전 사과연구소 소장 이순원 박사 님의 은퇴 후 라이프 스타일에 매료되어 동기생들과 댁을 방문했을 때  소개받아 내 멘토가 된 하선생은 현재 우리나라 사과재배농가들 중에서 손꼽히는 고수니 재미와 실리를 취한 절묘한 선택이었다.


무엇보다도 두 달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과 과수원을 할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과정 중에 내게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 같진 않았고 이해의 정도도 시골 출신의 동기생들에 비해 빠르진 않았으나 재미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의지를 갖고 달라붙으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었다.

그 확신으로 나 자신은 해결이 되었으나 집사람은 여전히 걱정스러워했고 또 서울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들도 아빠의 인생 이모작을 응원했지만 지금까지와 같이 아빠의 일로 끝나서 현재의 상황이 달라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두 예상했던 일이어서 "따로 또 같이" 살기로 했다. 

어디서 하던지 나만 간다. 

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살자. 

모두가 행복한 결론이 되었다.


사과밭을 구입하기 위해 두어 달 동안 전국의 사과주산지를 다닌 끝에 2013년 11월 3일  현재의 집과 과수원으로 이사를 왔다. 

경북 봉화군 감전 길 47.

다른 사과과정의 동기생이 계약했다가 해지 통지한 날에 내가 방문하게 되어 구입을 하게 되었는데 부동산 소개업자가 말하기를 " 확실이 땅마다 주인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 땅, 집, 배우자는 다 연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은 많이 들었다. 잘 되고 못되고는 각자의 복이고 팔자다. 


그렇게 해서 내 직업이 바뀌었다, 사과농부.

일반적으로 "귀농"이라고 한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니 돌아갈 귀를 쓴다고 이해하면 되지만 네이버의 영어사전 표현이 정확하다.

"(원래 농민이었던 사람이) return to farming: (원래 농민이 아닌 사람이) become a farmer"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전직이라고, 직업을 바꿨다고 말한다.

전직을 하고 이사를 왔을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지만 첫째는 여유가 없었고 둘째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골사람들이. " 혹은 "동네 사람들이.."라고 일반화시키거나 단정 짓게 되는 것이 우려되어 미루어 두기로 하였다.


올해가 5년 차로 그동안 내가 인수한 밭의 40%를 원하는 수형으로 기르기 위해 나무를 갱신하였고,  사과 마이스터 과정 2년 차를 맞이했고 친애하는 집밥 백 선생 덕에   계란 프라이와 라면 끓이기가 다 였던 초보를 지금은 가족들이 "봉화 셰프"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 흐른 시간 덕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으니 미루어 둔 숙제, 글쓰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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