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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Oct 07. 2018

농부는 만능선수다 (2)

 기획능력이 농부에게도 필요한가?

 '(중략) 기획 과정은 목표 설정, 문제상황의 분석과 진단, 기획 전제의 설정, 대안의 작성과 평가, 최종안의 채택, 관련된 파생계획의 수립 등의 절차를 거친다" - 교육학용어사전


기획- 생산 - 판매- A/S 등을 일반적인 경제단위의 기본 활동으로 본다면 농부도 확실한 1인 사업체로 기획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 농부와  사과농부에게 기획능력에 관해 실제 사례로 간략이 살펴본다.


1. 일반 농부의 경우


(여기서 일반 농부라 함은 우리 집 근처의 이웃들을 의미하는데 그 외의 경우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부의 캔버스는 땅이고 일 년에 걸쳐서 작목에 따라 한 번 혹은 두 번의 그림을 완성시킬 수 있다.

우리 동네의 작물은 콩, 메밀 등의 잡곡과 고추, 그리고 당귀, 우슬 등의 한약재, 그리고 무, 배추, 브로콜리, 감자 등을 번갈아 가면서 심는다. 예전에는 담배가 돈이 된다고 하여 담배를 재배하며 집집마다 건조장을 두었으나 손이 많이 가고 예전 같은 경기가 아니어서 많이 줄었다고 한다.


농작물의 가격은 상당이 유동적이어서 가격의 폭등과 폭락이 걷잡을 수 없다. 이는  산출량을 어느 정도는 하늘이 결정하기 때문인데 5% 미만의 과부족으로도 가격이 심하게 요동친다.

한정된 땅에 어떤 작물을 재배하는지가 농가의 수입을 결정짓기 때문에 농부들은 가격추세, 재고 등을 농협 등을 통하여 알아보고 동료들과 의논하여 재배품목을 정하는데 이것이 곧 기획능력이다.


작년 우리 과수원 밑의 밭을 경작하는 n 선생은 여름 배추를 심었는데  그 전해에 배추 가격이 비싸서 배추농가가 재미를 본 탓이다. 작년에 호황이었으면 금년에는 경작면적이 늘어나 같은 효과를 보기가 어려웠울텐데 다행히 봄 가뭄으로 농사가 안된 지역이 많아서 재미를 봤다. 그러나 가을배추는 속이 제대로 들어차지 않아서 별 도움이 안 되었다. 결국 배추를 선택한 그의 결정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큰 농사를 하는 p선생은 원래 한약재 재배로 유명한 분인데 2년 전부터 수박을 재배하기 시작하여 약초가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박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약초와 수박의 재배방식이 전혀 다르지만 수박을 재배하지 않았다면 그의 실적은 전년대비 40%가 줄어든 약초의 수확이 전부였을 것이다.

과수원 윗밭은 올해 콩을 심었고 그덕에 노린재 피해가 증가

또한 가격이 좋은 작물이라고 당장 심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 일반 한약재는 묘를 기르는데 1년이 필요하다. 묘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구입을 하여야 하는데 배추, 고추 등과 달라 공급이 원활치 않다고 한다.

-연작피해- 같은 작물을 계속 기를 경우 병원균의 침입을 쉽게 받기에 다른 작물을 재배한 후에 다시 심는다.


매년 수확 후에는 금액으로 표기된 성적표를 받게 되고 또 비교그룹까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직 사과 하나만을 하는 것은 축복이다, 일반 농부에 비하면.


2. 사과 농부의 경우


재배 작물을 정하는 고민이 없어 편하기는 하지만 사과농부도 새로운 과수원을 조성하려는 경우에는 생각해야 하는 변수가 너무 많다.  새로 만들지 않더라도 최근 2-3년 사과가격 추세와 재배면적의 확대 그리고 사과수입시대의 도래 등이  사과농부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나도 3년 차에 400주의 사과나무를 제거하고 1년 동안 예정지 관리를 하고 4년 차인 작년에 600주의 묘목을 심었다. 

"평균수령 13년인 사과나무 400주를 600주로 교체했다."

말은 간단하지만 앞으로 20년을 기대한 투자이기에  수형과 품종을 고심해서 선택했다.

위에서 본 과수원, 앞쪽의 작은 나무가 올해 식재한 부분

사과나무의 수형- 키가 큰지 작은지, 관리를 어떻게 하느지-등에 따라 대력 6-7가지의 수형으로 구분하는데 한 대학시험포장에서 4년에 걸쳐 실시된 7가지의 수형분석 결과도 교수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공산품과 달리 농사는 변수가 많아서 생기는 일이다, 아니 보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땅, 기후, 비료 등 특정할 수 없는 요인이 많은 농업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품종은 우리나라의 사과는 부사가 70%, 홍로가 20% 나머지가 아오리 등 기타사과로 분류되는데 부사도 종류가 많아서 공판장에서도 잘 구분이 안된다고 하고 홍로는 점점 수요가 준다고 하고.. 


수형은 키큰세장방추형- 처음 봤을 때부터 맘에 들었던 그리고 미국, 유럽의 대세이기도 한 -으로 식재간격 1미터로 나무를 심으며 원하는 높이로 나무를 심기 위해 도와주러 온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주인 맘대로"로 관철시켰다.

뱃사공 혹은 훈수가 많은 것도 농사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데 웬만하면 다 해본 것이기 때문이다.


품종은 대세인 부사, 최종으로 나온  부사계열 품종과 홍로 그리고 우리 식구가 좋아하는 노란색 사과인 

시나노 골드를 심었다.

이제 2년 차인 올해부터 조금씩 사과가 생산이 되겠지만 이번의 결정이 앞으로 올 20년에 맞는 기획의 결과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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