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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an 20. 2019

사과나무 전정과 3-cushion 당구

이번 전정은 되도록 혼자 해보려 한다. 작년에는 품앗이로 작목반원들과 60%, 내가 40%를 한 셈인데 올해는 최소한 70-80% 이상을 내가 하는 것이 목표다. 전정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여서 전정을 중시하여  전정이 반이상이라는 사람도 있고 아무나 가위 주고 자르고 싶으면 자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사과농사를 지을수록 나는 전정이 사과농사의 기본골격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정은 사과꽃이 피는 4월 하순 이전까지만 하면 된다지만 2월 말까지는 전정이 마무리되어야 안심이다. 날이  많이 추우면 나무에 안 좋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어 추위가 좀 누그러지는 1월부터 전정을 시작해왔다. 고밀식 유목 600그루, 성목 700그루가 대상이다. 


전정에 대한 원칙은 간단하다, "채광과 통풍을 보장하라". 고밀식(편의상 재식거리 3.8*1m 이하 )의 경우에는 수관이 복잡하지 않아서 간단한 원칙을 적용하는 행동 방침도 간단하다. 유튜브로 본 미국의 로빈슨 교수의 원칙은 1. 기준 높이로 자른다 2. 나무 전체에서 가장 두꺼운 가지 2개를 자른다 3. 복잡한 가지를 단순하게 만든다 로 요약된다. 그들은 사과농사 경험이 없는 남미 사람들에게 전정을 의지하여야 하니 되도록 단순한 룰을 만들어 적용시키려 한다. 그렇게 하여도 그들의 생산량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사과 재배 현황
                      한국                일본                미국
기준연도              2011                  2010                2010
재배면적(ha)      31,167              37,800             약 140,000
생산량 (톤)        379,541             655,300            4,231,000
평균 생산량(톤/ha)  12.1              `17.3                30

혹자는 그들의 높은 생산량이 큰 사과를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미국보다 2배 가까운 생산량을 보이는 이태리 남티롤에서 선호하는 사과는 직경 8cm 기준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중 소과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크기이다. 많은 사과농부들이 나처럼 전정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추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직접 전정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밭의 작년 생산량은 15-6톤을 상회하는데 이는 식재 방식의 차이와 기후여건에서 기인한다. 이미 1/3 면적을 고밀식으로 전환했고 나머지도 서두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의 평균 농가당 재배면적은 25 에이커 ( 약 30,000평) 이하가 60%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평균 재배면적 1.2 에이커( 약 2500평)인 우리나라의 사과농부들은 미국보다 더 섬세한 관리를 하지만 생산량은 뒤지는 형국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생산량이 많지만 아오모리를 다녀온 사람들은 사과에 적합한 그들의 환경여건을 몹시 부러워한다. 일본도 최근 고밀식 재배에 관심을 보인다고 하니 그들의 생산량도 곧 올라갈 것이다. 


 환경여건이 달라서 그나마 적은 면적도 공들여 관리하지 않으면 생산량은 더 떨어지니 전정도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실행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갖고 있는 이태리 전문가가 세계 최고 생산왕이라고 칭하는 신종협 선생의 전정 시범을 보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어려운 것이 없다, 적어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재식 간격 1미터의 고밀식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재식 간격 1.5미터의 성목은 수관이 복잡해서 변수가 훨씬 많다. 비디오를 볼 때는 이해를 한 듯했지만 막상 가위를 들면 막막해진다. 시작하기 전에 몇 번을 돌아봐야 한다,  마치 좋아하는 이의 집만 빙빙 돌듯이. 그러다 시작한다, 먼저 나무 전체를 보고 수세를 파악하고 전정의 강도와 상부 처리 방향을 잡은 뒤에 위에서부터 아래로, 큰 가지부터 작은 가지로 그리고 안에서부터 밖으로. 틀린 것과 맞는 것의 구별이 분명하지 않은 것이 전정의 특성이라 하지만 정답은 있는 듯하고 일단 자르면 다시 붙일 수 없으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잘하든 못하든 나름의 기준으로 자르는 행위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배워서 가지를 자르며 중얼거리거나 속으로 생각한다, ' 너는 두꺼워서 나가고'. '꽃눈이 없어서 안되고' ' 너무 길어서' 등등. 가끔은 나무에게 얘기도 한다. " 맘에 안 들어도 이해해라, 나로선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그러다 보면  묘하게 재미가 생긴다. 날씨가 너무 춥지만 않으면 쉬는 시간 없이 계속할 수도 있다. 하나도 같은 것은 없으나 형태를 보고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 풀어가는 과정이 뻔하지 않아 재미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정은 3 쿠션 당구게임을 생각나게 한다. 요즘 친구들과 다시 치기 시작하여 도토리 키재기를 하며 서로 고수라고 우기며 즐기는 당구게임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1. 당구나 사과나 한참 좋은 시절엔 재미있는 줄 몰랐다.
    지금이 나쁜 시절이란 얘기가 아니라 아주 바빴던 시절에는 당구대를  접할 기회가 드물었고 사과농사란 꿈도 꾸지 않았다는 말이다. 학교 동문회도 나이가 먹어가며 골프 동호인은 줄고 당구 동호인 모임이 생긴다. 올 후반기부터 가끔 서울 집에 가면 오랜 친구인 호적수들과 게임을 하는데 말하는 것 반, 당구 치는 것 반이다. (작년 연말 휴일에 아주 넓은 당구장에 오후 4시쯤 들어갔는데 20개가 넘는 당구대가 나 같은 지공 거사들로 꽉 차있는 것에 몹시 놀랐었다. 정말 노인들이 많아졌다. 주제가 빗나갔는데 이도 노인의 특징 중에 하나다. ) 이제 시간의 여유가 생기니 예전에 생각 못 했던 즐거움이 생겼다.


2. 잘은 모르지만 조금 아는 상식으로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이런저런 변수가 많아서 유추하고 추측하는 [불안 + 재미]가 있다.

 일단 행동을 취하면, 즉 큐대를  내지르거나 혹은 가지를 자르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그래서 행동하기 전에 살펴보고 나름대로의 수를 구해보고 실행을 옮기는 그 프로세스 자체가 약간의 불안감과 재미를 만든다.


3. 고수가 당구를 치거나 전정을 할 때는 내 생각과 거의  같이 하는 듯 보이는데 실전에선 당연히 다르다.

 최근에 무릎 수술하여 병원신세를 진 내 호적수 친구가 말했다, "병원에서 당구게임 중계를 보니 거의 내 생각과 같이 치더라, 내 점수를 좀 올려야 할지도...". 그 친구 다리가 나았을 때 그에게 최초로 냉정한 현실을 직면케 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길 바란다. 친구가 실망하는 모습을 볼 이유가 없다. 신종협 선생도 오래전 내게 그런 얘기를 했다. "제가 전정을 하는 것을 본 어떤 분이 나랑 똑같다고 하셔서 가위를 드렸더니 진도가 잘 나가질 못하더군요.".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실행은 어렵다.


4. 당구 고수가 아니어도 전정 고수가 아니어도 플레이 중엔  즐겁다.

 그럼 된 것 아닌가? 즐거우면 됐다. 그러나 파트너가 필요한 당구는 맘에 맞는 파트너가 있어야 즐겁다. 그에 반해 전정은 나무가 파트너로 혼자 해도 즐겁다. 그 대신 당구는 결과를 즉석에서 알려주고 전정은 일 년이 지나야 아는데 그도 전정 혼자만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


당구와 전정은 환경여건이 아주 많이 달라서 전자은 쾌적한 환경에서 이루어지고 후자는 추운 야외에서 행해지지만 생업에 속하는 전정작업 자체가 즐거운 일이어서 든든한 겨울 복장 채비만 준비하면 되니 세상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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