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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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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Feb 24. 2019

사과나무 전정중

겨울엔 쉬시지요?

농사는 겨울엔 대체로 일이 없다. 혹은 정중동이다. 우리 동네도 작년 가을에 약초밭, 배추밭을 로터리로 말끔히 정리 해 놓았다. 설날 이후론 저녁에 마을회관에서 저녁을 공동취사로  같이 먹고 윷놀이를 한다. 사람이 많든 적든 남녀로 패를 나누는데 성비에 따라 남자가 여자팀에 들어가기도 한다   삼판양승 제로 진 팀은 천 원씩 내어 다음날 반찬값으로 한다. 대개 대보름이 지나면 끝나는데 올해는 얼마 안 남은 2월까지만 놀기로 했다. 윷놀이가 묘하게 사람을 몰입시키는 데가 있어서 일단 게임을 참여하면 같이 웃고, 같이 애석해하게 된다. 이렇게 음력 정월을 모여서 지내는 마을이 많지 않은데  우리 마을이  소위  '옛 인심이 남아 있는 마을' 이기 때문이다. 아무 연고도 없었는데 이 마을에 터를 잡은 것은 정말 복 받은 일이다. 정중동이라 함은 밭에는 아무 변화가 없고 사람들은 윷놀이를 하며 한가한 겨울을 즐기지만  올 농사를 위한 작업은 온실에서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올해 심을 고추를 위하여 바닥에 열선을 깔고 모래를 부어 온도가 15도 정도를 유지하며 고추씨에서 싹이 나오길 기다린다. 싹이 나오면 다시 포트로 옮겨 고추밭에 심을 준비를 한다. 한편으론 준비하면서 한편으론 일이 적은 겨울을 즐기며 보낸다.


그러나 사과농사는 동중동이다. 대개 1월 초까지는 사과를 포장해서 발송하느라 바쁘고 사과 저온저장고가 바닥을 드러낼 쯤에는 전정을 위한 교육을 다닌다. 그리고 설이 지나면 전정을 시작한다. 꽃이 피기 전까지 가지들을 정리하여 빛과 바람을 원활하게 받으며 좋은 사과를 계속적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가지를 솎아 주고 수형을 잡아 주는 작업을 정지전정이라고 하는데 통칭하여 전정이라고 한다. 결국은 나무가 자리 잡고 있는 주어진 공간의 효율적 이용에 관한 일이다. 사과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휴면을 하는데 생장에 적합한 환경요건이 조성되어도 생육이 시작되지 않는 휴면을 자발휴면이라고 하며 사과나무는 7.5도 이하의 온도에서 1200-1500시간을 보내야 자발휴면이 완료된다. 자발 휴면 이후에 생육 적합 요건이 갖추어지면 생육이 시작되지만 외부여건이 적합하지 않으면 휴면이 계속되는데 이를 타발휴면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자발휴면은 1월 중순 이후에 종료된다고 하는데 자발휴면이 충분이 보장되지 않으면 이듬해 나무의 상태가 좋지 않아 결실불량 등의 원인이 된다. 결국 사과나무도 사람처럼 충분한 잠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1200-1500시간을 어떻게 측정하는지도 예쁜 꽃을  피우는 것만큼 신비스러운 일이다. 또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자료에 의하면 전정후 48시간 이내에 기온이 많이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면 전정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는 절단 부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전정은 추위가 한풀 꺾이고 자발휴면을 방해하지 않는  설 이후에 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3월이 가기 전에 1200그루의 나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계산상으론 간단하다. 1260주/ 6주 ( 2월 2주 + 3월 4주)= 210주 / 1 week=30주/1 day. 즉 하루에 30주씩 하면 3월에 끝나는데 하루에 30주는 약간의 여유가 있는 정도라 할 만하다, 단 매일 할 수 만 있다면. 설 이후 12일간 실제 작업시간을 보니 약 50시간으로 하루 5시간이 안되는데 현재 진도는 약 30%. 시간이 갈수록 빨라지니 승산이 있다. 올해는 전정의 80% 이상을 혼자서 하는 첫 해가 되는 것이 목표다. 매년 전정을 조금씩만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맡겨  오다가 작년에 혼자서 50%를 하고 나머지는 품앗이로 해결했었다  

전정한 가지를 병에 꽂아 두었더니 자발휴면이 끝난 뒤라 꽃을 피었다.

추운 겨울날 사과밭에서 하는 작업이라 힘든 여건이고 전정이 변수가 많아 어렵지만 한편으론 나무마다 상황이 달라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제일 재미있는 작업이기도 해서 걱정하는 만큼 힘든 작업은 아니다, 단 적절한 방한 장비를 갖추어 추위가 견딜 만해야 한다. 전정이 재미있는 이유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고 복잡하긴 하지만 동시에 주관적인 견해 혹은 의도가 중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잘된 전정이라고 여겨지는 전정이 존재하지만  과원주가 의도 한 바가 있어서 한 전정이 그 잘된 전정과 같지 않다고 해서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제삼자는 양쪽을 비교하여 잘된 전정과 그렇지 않은 전정을 나눌 수 있으되 과원주의 입장과는 관계가 없다. 지난 5년간 부분적으로 내 밭의 전정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것일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늘 망설이며 불안해하며 전정을 했기에 재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생각할 수 있는 변수들을 고려하며 이건 좋은 꽃눈이 아니어서 나가야 되고, 또 저 가지는 사과 없이 그늘만 만드니 나가야 되고, 이 가지는 좋은 꽃눈이 많지만 밑에 그늘을 만들어 줄여야 되고.. 등등의  이유를 대며 작업을 하다 보니 일종의 수수께끼 푸는 작업처럼 되어 즐거워졌다. 멘토인 하선생이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다 전정을 하면서 내가 한 행동에 분명한 이유가 있으면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사과의 일 년 작업 중에 전정만큼 시간의 여유를 갖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작업이 없기도 하다.


일단 사과나무 앞에 서면 신 선생의 주문을 생각한다, " 내가 하는 일이 나무에게 좋은 것이기를.." 그리고  빛과 바람을 생각하며 가지 정리, 혹시 병든 가지나 벌레가 있거나 알을 낳아 놓은 가지 제거하고 절단 부위에 보호제를 도포하면 끝이다. 내가 하는 전정작업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병든 가지 및 벌레가 있거나 알을 놓아둔 가지들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전정을 직접 하지 않으면 많은 부분을 놓칠 수 있다.


1.  가지부란병

나무가 연세가 아주 많은 편이라  (올해가 식재 19년생, 대개 15-20년을 본다) 부란병에 취약한데 올해는 유독 가지에 부란병이 많았다. 하루에 모아 놓은 부란병 가지와 알이 있는 가지들이 거의 1-2킬로 이상 나온다. 전정작업이 끝나면 자른 가지들을 파쇄하여 밭에 두는데 병이 있는 가지가 걸러지지 않고  잔가지파쇄기로 잘게 부서지면 그만큼 전염도가  높아질 것이다.


2. 하늘소 애벌레와 말매미 알

하늘소 애벌레는 나무에 파고들어 아래위에 구멍을 뚫고 2년여를 기거한다고 하는데 뚫어 놓은 구멍으로 수액이 흐르며 부란병 침투를 용이하게 한다. 말매미는 가지에 알을 낳는데 그로 인해 가지가 말라버린다. 매미가 딱딱한 나뭇가지에 알을 찔러 넣는다는 것이 신기한데 작년 가을부터 모아 태운 가지도 만만치 않게 많았는데 아직도 많은 가지가 나온다. 밭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부화되어 땅속으로 들어가 수액을 먹으며 5-7년을 살 것이다.

말매미가 알을 놓은 가지와 말매미알
하늘소 유충이 침입한 가지와 이동통로

3. 절단 부위의 보호제 도포

"올바른 나무 전정"이란 책을 쓴 알렉스 사이고는 근대 전정의 아버지로 평가되며 상처 도포제가 병원체의 감영으로부터 상처를 보호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일축했다.  도포제를 칠한 것도 일이어서 꽤가 나는 판 이어서 그의 책을 읽고 지난 2년간  절단 부위에 보호제를 도포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전정을 하면서 보니 실상은 달랐다.

절단부위가 감영된 나무들

다시 책을 찾아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상처 도포제가 부후를 중단시키다는 자료는 없다. 이것은 방어체계를 무력하게 하고 부후 곰팡이를 보호한다. 가지가 올바르게 전정이 되면, 나무는 내부에 보호지대를 형성할 것이다. 만약에 상처에 도포제를 처리하지 않고 두게 되면 상처 표면은 1년 이내에 수피처럼 눈에 띄지 않을 정도가 될 것이다.

P 158, 올바른 나무 전정, 알렉스 사이고 지음

결국 내가 올바르게 자르지 못했거나, 사이고 씨는 미국 수목원에서 근무했으니 과수원의 밀식 환경을 예상한 것이 아니거나 혹은  1989년 나온 책이니 환경이 변했거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내 과수원에는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 아니다. 다시 상처 도포제를 바르기로 한다. 사이고의 말대로 도포제가 곰팡이를 보호하지 않도록 절단 즉시 도포하기로 했다. 오히려 짐만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직접 전정을 안 했으면 대충 눈에 띄는 부분만 처리하고 넘어갔을 것이니 내가 하는 전정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에 전정이 즐겁다. 


저녁 먹으러 마을회관으로 걸어가는데 강변에 버들강아지가 한창으로 피고 있다. 이직 전정도 한참 남았는데 올해는 오는 봄이 덜 걱정이 되는 이 근거 없는 자신감 자체가 또 다른 걱정거리가 된다. 나무도 한 살 더 먹어 작년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질 것이고  날씨 등 여건이 당연히 다르겠지만 다시 시작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 농사의 도 다른 장점이다. 올해는 멋있게 좀 더 맘에 드는 사과가 나오도록 조물주와 동업이 잘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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