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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Jan 13. 2019

틀린 것이 틀린 게 아니고 맞는 것이 맞는 게 아닌..

한국 고밀식 사과 연구회 동계전정교육에 참가하고

 산에 있는 나무들과 달리 과수는 사람이 적정한 수형 유지 (정지)와 채광, 통풍을 개선하고 주어진 공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가지를 정리 ( 전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전정은 정지와 전정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인다. 과수농사는 한정된 토지공간에 나무를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햇빛과 바람이 잘 통하게 하면서 적절한 물과 영양분을 공급하면 맛있는 과일이 생산된다, 끝. 

말로는 쉽고 간단하다.


나무를 심을 때 4미터 열간 거리에 2미터의 간격으로 심으면 나무 한 그루당 8제곱미터가 소요되고 고밀식으로 분류되는 3.6미터에 1미터 간격이면 3.6 제곱미터가 필요하다. 3,000평의 토지에 각각 1,240그루와 2,750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 사과 선진국인 유럽에서는 그 간격이 더욱 촘촘해지는 추세인데 우리나라도 그 추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큰 흐름은 일본식인 구로다식 (40-50년 생육), 세형 방추형 (나리타식, 20년 생육)과 키큰세장방추형 (20년 생육)으로 나누어지는데 키큰세장방추형이 고밀식으로 유럽 미국의 수직축형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하며 열간거리가 3미터까지, 식재간격도 1미터보다 좁은 80-70센티 미터로 좁아지고 있다. 고밀식이 주축인 이태리의 헥타(3천평)당 평균 사과생샨량은 우리나라의 3배를 상회한다.


고밀식 사과재배에 대한 기술적인 뒷받침은 영천의 신종협 사과 마이스터와 그의 제자인 하병규 사과 마이스터를 비롯한 몇 분의 사과 마이스터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주도하는 한국고밀식사과연구회 (1/13일 현재 971명 가입)와 경북대 사과연구소가 주축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복을 많이 받아서 사과농사를 시작하며 하병규 마이스터를 만나 6년째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어서 현재까지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론 모든 사과 생산국들이 지향하는 추세인 고밀식 사과재배에 대해 민간인들이 주도하여 400명 이상이 참가하는 교육프로그램을 4년째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농민들의 돈으로 운영되는 농협, 능금농협은 선거가 임박해서 인사하려 찾아오는 후보들 외에는 공헌한 것이 없고 나라에서 과수 관계일을 하시는 분들 역시 소원한 것에 씁쓸 하기도 하다. 이런 현상이 정상은 아닌데 아주 익숙한 일이어서 이상하지도 않으니 정상이라고 해야 할 수도...

전정을 설명하는 신종협 마이스터

사과교육을 하면서 수형에 너무 민감해하지 말라고 하는 강사들이 더러 있는데 내 짧은 소견으로는 주어진 공간에서 원활한 채광, 통풍을 하며 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수형의 적절한 배열이 기본요건이기 때문에 동의할 수 없다.  실제로 초밀식을 하여 사과나무의 열을 빈틈없는 벽으로 만드는 유럽의 2D (Two dimension) 스타일의 생산량이 삼각형의 밑변이 이어지는 3D 형식의 우리나라보다 월등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의 사과 전문가( Mr. Kurt Wert, 전 남티롤 사과연합조합장, 경상남도 사과 컨설팅)까지 세계 최고의 생산량을 생산한다고 극찬을 받는 신종협 사과 마이스터는 그런 고밀식 재배를 자생적으로 시작하여 일가를 이룬 분으로 초기에는 그의 밭과 인근 밭에서 특정 날을 잡아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 대상으로 전정교육을 했다. 사람들이 예상보다 많이 찾아오고 이동하는 차량이 너무 많아져 주차문제 및 사고 우려가 있어 2년째는 영천기술센터 강당을 빌렸는데 300명 이상이 참여했고 3년째인 작년에는 약 500여 명이 2일에 걸쳐 10명의 강사진을 돌아가며 수강하는 체제로 진행했다. 올해는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300명으로 수강인원을 제한했는데 진행요원 포함 400여 명의 행사가 되었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각 세션이 제시간에 끝나서 다음 세션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시간알리미 역할을 했다.


고밀식 재배방식도 지난 몇 년간 조금씩 바뀌고 강사분들이 나름 체계를 이룬 분들 이어서 올해는 미리 만나 토의와 실습을 통하여 전체적으로 일관된  방향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사전 미팅을 하였다. 진행요원들도 같이 참여하였기에 나는 우리 작목반원들이 각 강사의 배경과 주장을 미리 알아 새겨들을 수 있도록 자료를 제공하려고 핸드폰으로 촬영하여 정리를 하였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인생이 달라졌겠다고 생각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고밀식에 관한 한  가히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수렴하는 과정이 내게는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었고 그런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정리를 위해 촬영한 동영상을 보니 지금의 초밀식이 아닌 과거의 우리나라형 고밀식 사과(현 우리 밭 19년 된 성목)를 재배하는 마이스터의 논지와 관리방식에 따른 논쟁 ( 예를 들면 주최 측은 유목기에 손이 덜 가는 절단방식의 전정을 선호하고 어떤 분은 사람을 쓰더라도 빠른 착과와 수형을 잡기 위한 유인을 선호한다)이 어느 고승의 일화를 생각나게 했다. A에게도 맞다 하고 그에 반하는 B에게도 맞다 하고 어찌 양쪽이 다 맞을 수 있냐고 항의하는 C도 맞다고 했다는 스님.  

아 그리고 한 분 더 있다.

◇ 김현정> 세상에 정답은 없습니까, 그럼?  

◆ 채현국> 있을 수가 있나요? 해답이 있을 뿐이지 정답이라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거죠.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그때그때의 해답이 있을 뿐이지 정답이라는 발상은 아주 잘못된 발상이죠. 그게 독재가 만들어낸 사고방식이죠.  

◇ 김현정> 지금 저는 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정답이란 세상이 없다. 살아보니 살면 살수록 더 그런 생각이 드세요?  

<CBS 김현정의 뉴스쇼> 중에서


채현국 님은 잘 모르던 분인데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갑자기 받는 분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리 보인다. "늙으면 뻔뻔해진다, 꼰대가 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해답이 있을 뿐이지 정답은 없다"란 말이 깊은 울림을 준다. 다만 "그게 독재가 만들어낸 사고방식"이란 말에는  쉽게 공감이 안 간다. 독재가 억울해할 까 봐가 아니라 그게 일반적으로  편향된 사고방식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지금까지 정답만을 추구하고 살아온 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가 그리 느낀다면 그에겐 타당한 일이다.


모든 사과과원에 일괄적으로 맞는 정답은 없다. 각 과원의 생육조건과 과원주의 철학에 맞는  해답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틀린 것이 틀린 게 아니고 맞는 것이 맞는 게 아닌 것이 전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년 열심히 전정교육현장을 쫒았다니며 조금씩 적용하다가 작년에 전면적으로 시험실시한 나의 전정이 맞는 것인지 틀린 것인지 모른다. 어떤 이는 잘했다 하고 어떤 이는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고 했지만 농사에는 변수가 워낙 많다.  작년의 폭염과 저온 장애 등으로 내 전정 실력을 절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된다. 예년보다 색도 좋았고 나무 수형이 비교적 간결해지긴 했으나, 안하던 심층수도 뿌렸고 일조시간도 예년보다 길어서 어떤 요인이 어떨게 작용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 모두의 전정이 각자에 맞는 해답이라는 편안하지만 영양가 없는 멘트로 끝낼 수 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1. 나에겐 해답일 수는 있으나 나무에게도 해답일까?

2. 매번 전정할 때마다 "내가 하는 전정이 나무에게 최선이길 " 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신종협 씨의 생산량은 

    우리나라 생산량의 5-6배가 된다. 모두에겐 해답이 있을 뿐이지만  그는 정답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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