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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농부 세네월 Mar 17. 2019

농부의 소확행

아궁이 방에서 빗소리에 깨어나 잠자리에서 개기기

 

 위의 사진은 분천역 앞 동네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집이 우리 집의 원형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집처럼 우리 집은 약 65년 전에  지어진 정면 4칸 겹집으로 사진과 비슷하지만 살짝 손을 보긴 했다.  겹집이란 북쪽의 낭림산맥에서 시작되어 태백산맥을 거쳐 제주도 산간지방까지 이어진 내한성 주거구조다.  외양간을 포함한 모든 구조를 벽이나 문으로 감싸어 찬 바람을 피하고 안에서 활동하게 되어 있다.

겹집
대들보 아래 방을 2열로 배치한 전(田) 자형의 복렬형 가옥을 말한다. 홑집에 비하여 폐쇄적인 구조이지만 방한 효과가 크다. 겨울철이 길고 추운 관북 지방과 산간 고원 지대에 분포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겹집 (Basic 고교생을 위한 지리 용어사전, 2002. 2. 5., 이우평)        

우리 집을 방문하는 손님은 두 그룹으로 나뉜다. '언제 새로 지을 것입니까? " 와 " 집 참 좋네요, 우리도 이런 집 만나면 좋은데..". 그러면 나는 늘 목에 힘주고 말했다, 선대에 덕을 많이 쌓았어야 된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선대의 덕으로 오래된 시골집을 얻었고 집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 '영식이 남편"과 살고 있으니 우리 부부는 참 막강한 부부다. 현재 집과 과원을 사려고 할 때 마나님이 한마디 했다." 당신 과원 상태보다는 집 욕심에 사는 거지?". 늘 머리를 수그리고 다니지 않으면 낮은 문에 정수리가 배겨 나지 않기에 '겸손하게 살기'가 이 집의 기본이다. 겸손하게 살게는 하지만 즐거움도 있는데 비 나 눈 예보가 있는 전날 저녁에는 유일한 아궁이방에 불을 지피고  그 방에서 잔다.  

우리 집의 유일한 아궁이방도 표지 사진에서 처럼 좌측 끝이고 넓은 툇마루와 세 개의 창호지 문이 나있어 밖의 소리가 아주 잘 들리고 그중 2개의 문은 시눗대가 자라는 곳과 마주 보고 있어서 비, 바람소리가 아주 생생하다. 아파트의 방음처리가 잘 된 유리창이 주는 적막한 고요함과  그 유리창을 두드리는 희미한 빗소리도 좋다. 그러나  등은 따뜻하고 얼굴은 약간 차가울 정도의 실온에 이불을 목까지 올리고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는 것은 예전에 백패킹 다닐 때 텐트 안에서 비를 만나는 것과 같은 분위기지만 여건이 훨씬 좋은 상황이다. 비가 샐까 아니면 배수로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이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된다. 혹 밤중에 깨었는데 비가 오고 있으면 소리가 너무 생생하여 잠결 중에도 이 와중에 따뜻하고 편안한 잠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해진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빗소리가 들리고 서둘러 일어날 필요 없이 아랫 묵이 따뜻한 잠자리에 누워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어서 일기예보가 매번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아궁이 방에 불을 지핀다. 불이 좋은 계절에 가능한 소확행이다.


올해 발견한 죽변항 음식점과 횟집


죽변항이 약 50km로 그 반의 도로가  직선화 되었고 나머지 반도 올 9월 개통이다. 완공이 되면 30-40분 거리로 바뀌는데 지금도 50분 - 60분이면 도착한다. 봉화 온 초기에 식구들과 대게 먹으러 죽변항에 갔다가 역시 먹거리는 서울이 최고야를 연발하며 발 끊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 최근에 예전부터 신뢰하던 맛블로거 뚬*님이 죽변의 ㄱ 식당을 추천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시작된  ㅇ횟집- ㄱ 식당 콤비는 나를 올해에만  무려 5번이나 가게 만들었다. 상차림을 전문으로 하는 전라도 출신 ㄱ식당 아주머니 음식 솜씨와 그녀의 전문적인 구매 조언 덕분에 수준급의 밀복회- 참복회- 참가자미회 등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줄가자미와 회 (좌상)

얼마 전 백전노장 연륜 있는  백두대간팀과 외씨버선길 2코스를 서둘러 마치고 죽변항으로 가서 시식한 ' 이시가리 (줄가자미)'는 일행의 찬사를 받았다. 모두 대기업 출신으로 먹는 데는 한가닥 하시는 분들이지만 줄가자미는 처음이었다. 나는 예전에 부산에서 먹은 적이 있는데 그쪽에서는 기름진 이시가리 회와 물에 헹군 묵은지를 싸서 먹는다. 그때도 아주  맛있게 먹어서 마나님을 모시고 다시 찾아갔었다. 그러나 ㅇ횟집의 아주머니는 뼈째회  부위와 살 부분을 같이 먹으라는 처방을 알려 주었는데 절묘한 맛이었다. 이 생선이 횟감으로는 세 손가락에 꼽힌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시가리가 아주 인상적이었지만   참복이나 참가자미의 맛도 아주 훌륭했다.  마나님과 같이 간 어느 날에는 ㅇ횟집-ㄱ식당 구역이 휴일이어서 그 옆 구역으로 갔는데 품질이 확실히 달라서 실망했지만 오히려 'ㅇ-ㄱ' 콤비의 진가를 확인 한 셈이었다. 멀지 않은  항구에 맛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단골집을 확보하였으니 이 또한 확실한 소확행이다. 


짧은 여정은 언제든 가능하다

장사하시는 분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통리장의 트레이드 마크 적산가옥.

날이 꾸물거리는 와중에 전정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오후에 K가 찾아왔다.  별일이 있는 게 아니라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일을 접고 태백 통리장 구경 가자고 한다. 통리장은 특이하게 5일장인 다른 장과는 달리 10일 장으로 매달 5, 15, & 25일에 열리는 장인데 통리 마을길을 뺑 돌아 장이 열리는 비교적 큰 장이다. 작년에도 K와 눈 오는 날 장구경 갔다가 허탕 치고 온 경험이 있었다. 하늘을 보니 시커먼 구름이 점점 많아지고 비 냄새도 나는 듯하여 일을 접고 통리로 장구경을 갔는데 가는 길에 비가 오기 시작하여 약 30분 후에 통리 장에 도착했을 때는 함박눈이 내려 장은 거의 파장이었다. 좁은 길에 장을 펼쳐 놓아 1톤 트럭이 간신이 지나가는 넓이였는데 그 많은 짐들이 1톤 트럭에 마술처럼 실려지고 여기저기 적당한 위치에 주차해 있던  트럭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조만간 우리나라 3대 장중에 하나라는  3일과 8일에 열리는 북평장을 다녀오기로 하였다. 춘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평항에서 내려 2-30분 걸으면 북평장이다. 장 구경 후에 다시 30분 걸으면 부일 막국수. 그곳의 유명한 수육과 물김치에 소주 한 잔 하고 다시 북평역 경유 춘양역으로 오는 코스다. 집사람 말대로 봉화로 오고 나서 먹거리의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마음 내키면 아무 때고 제칠 수 있는 것이 아직은 덜 바쁜 농부의 소확행 중의 하나다. 아무 때고 제친다고 했지만  사과나무 눈치는 많이 보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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