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과농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농부 세네월 Dec 01. 2019

이젠 그 친구의 배려에 대해 말해도 되겠다

한*회 친구들에게

지난주 망년회 모임은 나로선 오랜만에 마나님 모시고 나가서인지 많이 즐거웠다. 나는 이 모임에 늦게 참가해서 거의 20년이 돼가지만 다른 친구들은 대학 1년 차부터 시작했으니 50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나 혼자 늦게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또 사과농사한다고 봉화로  내려와 있으니 모임에 참석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미안할 때가 많다.  그 날 얘기하고 싶었지만 따로  글로 써서 보내자고 생각한 올해 회장 ㅇㅍ이의 나에 대한 배려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그에겐 이미 개인적으로 고맙단 말을 했지만  친구들과 같이 나눌 일이다.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은 혹시 다른 친구들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줄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배려는 어떤 배려고 염려는 왜 하는데? 궁금하지? 

 

나의 첫 사과농사 해인 2014년 , 당시 회장이던 광석이가 한솔회 가을 여행지를 우리 과수원으로 정해서 친구들과 부인들이 처음으로 방문했다. 그때 ㅇㅍ이가 10월에 사과 80 상자가 필요한데 가능한지를 물었다.  그리고 ㅇㅍ의 큰애 결혼식이 있었고 (나는 사과 수확 관계로 참석을 못했다), 이후 사과를 주문하면서  같이 보낼 편지가 있으니 보내겠다고 했다.  그의 비서가 편지를 봉투에 넣어 택배로 보내왔고 나는 그 편지를 사과상자 안에 넣어 발송을 했다. 얌전한 봉투인데 봉해지진 않았지만 딸아이의 결혼식에 대한 답례로 보내는 편지로 생각되어 내용이 별로 궁금하지 않은 데다 내가 수신인이 아니어서 편지를 꺼내어 읽을 권리도 없기에 전달자의 임무에만 충실했다. 비서도 배려심이 깊어 대 여섯 통의 편지가 남아서 작업장 한편에 놓아두었다. 

ㅇㅍ에게는 아이 결혼식 답례로 내 사과를 선택한 것에 대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한편으론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친구들에게 부담을 주게  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작업 중 쉬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이는 자신을 ㅇㅍ이가 있는 회사의  임원으로 ㅇㅍ을 모시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두 분의 우정에 대해 부럽다"는 말과 같은 월급쟁이 출신으로 자신도 부럽다는 말을 하기 위해  전화를 했다고 했다. 

"우정이라니요?"
" 아,  ㅇㅍ사장님 편지 말입니다. 그 편지를 읽으면서 두 분의 우정에 대해 많이 부러웠습니다.".


전화를 끊고 얼른 남아 있던 편지를 찾아 읽어봤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찾은 편지를 읽으면서도 울컥해지는데 그때는 어땟었겠는가? 총 12줄의 편지인데 자신의 얘기는 단 한 줄이고 나머진 신참 농부 얘기였다. 답례의 인사로 그치지 않고 신참 농부의 사과를 위한 마케팅까지 겸한 것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가를 촉촉하게 만드는 ㅇㅍ의 배려가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답례로 사과를 택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저런 편지는 생각조차 못했다.

곧 우리 한솔 카톡에 올리고 싶었으나 5년 전만 해도 아직 자녀들의  혼사가 많이 남아 있을 때여서 이 이야기를 하면 혹시  친구들이ㅇㅍ처럼 사과를 보내야 한다는 부담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염려되어 입을 다물기로 했다.  지금은 사과농사도 6년이 되어 자리 잡아가고 또 대부분 자녀 혼사가 마무리되었으니( 나는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ㅠㅠ) 부담도 줄어서 올해 회장직을 맡아 신경을 많이 쓰고 고생한 ㅇㅍ회장에게 뒤늦은 공개적인 감사를 하고 싶었다.


"ㅇㅍ아, 정말 고맙다. 그 배려를 조금씩이라도  갚으며 살고 싶다."


추신-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우리 과원은 나의 노력 더하기 주위의 많은 도움과 배려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면서 ㅇㅍ 뿐만 아니라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우리 과원뿐만
아니고 나 자신 또한 마찬가지.
  

매거진의 이전글 사과, 껍질째 먹어도 안전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