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묵상]
8.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9.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0.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1.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2.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13.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사사기 2장>
[1] 시대 속의 무질서
모세 이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불러주셨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선택하신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에 머무는 자이기 때문임을 알려주신다. 이후 모세에게 여호수아를 안수하여 회중 앞에 세우고, 모든 일과 사명을 위탁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 곳을 알게 하라고 말씀하신다(민수기 27:18-20).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 속에서 순종하여 사람들 앞에 여호수아는 나아왔지만 사람들을 이끈다는 것은 엄청난 능력을 요구하게 된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신을 벗고 나아왔지만 말을 못 하고 혀가 둔한 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출애굽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모세 옆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능력을 나타내심을 직접 보았던 여호수아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두려웠을 것이다. 그 두려운 마음을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시고 두려워 말라 말씀하신다(여호수아 1:1-9)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가치의 기준이 다르다. 누구는 돈에 삶의 기준을 삼을 수 있으며, 행복에 기준을 삼으며 살아간다.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삶을 살아내는 방법도 다를 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받아들이는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들도 다르다. 누구에게는 향락이라는 것이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도구(one of things)라고 말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건강하지 않은 것이라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내면을 건강하지 않게 만드는 도구들은 외면으로도 드러난다. 철저한 관리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끝내 중독은 파멸로 이끌고 간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굳이" 지키지 않더라도 잘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는데 죽지 않는 것을 보고 우리도 모르게 무언가에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작은 습관을 만들어버리게 된다. 여호수아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다. 이후 여호수아와 그 세대들이 죽고 이후의 세대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작은 생각과 습관들로 여호와를 모르는 세대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 세대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사람의 삶은 사람의 힘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불안전함(Entropy, 엔트로피 : 무질서)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사람의 끝은 죽음으로 가게 되는데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무질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새로운 것을 찾거나, 이전에 즐겼던 도파민을 초과하여 내면을 채워보기도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는가? 무질서하지 않은가?
[2] 시대 속의 건강함
빨간불에는 길을 건너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 "굳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한 공공의 질서이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규율로 인하여 안전할 수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이후의 세대들은 여호와를 모르는 세대로 삶을 살아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따라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었다. 최악의 건강 상태 속에서 때에 따른 하나님의 회복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했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분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다 기록할 수 없었겠지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와서 건강한 삶을 살아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록돼 있다.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모여서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로 역사가 진행돼 왔다.
운동해서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더 건강해지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 건강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먹는 것을 줄여야 하는 것과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 숨이 차오르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건강해진다. 하지만 그 고통과 불편함이 싫어서 행동하지 않으면 건강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너무 불편하고 고통스럽게 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나의 기준"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해 불편함과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 건강하지 않았던 것을 버리는 것이 얼마나 생각이 많아지겠는가?
[3] 마무리 :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사람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사람들의 가치가 분명 여기 있었는데 눈을 깜빡하는 순간 다른 곳에 있는 시대가 되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데 막막하기만 하고 답답한 마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미래를 모르고 예측불가한 삶이 어떻게 보면 너무 감사하다.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더욱 최선을 다해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내면을 건강하지 않게 만들었던 것이 있다면 단번에 버려야 한다. 지금 치열하게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가 아닌 지금의 시대가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 돌아보며 우리의 기준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선하고 옳은 것에는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어있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닌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우리의 기준을 정확하게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