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 왜 기초과학 학문들이 문을 닫기 시작하는가?
어렸을 적에 전자기기를 분해하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 데스크탑을 분해하면서 이 부품들이 전기를 받아들여 어떻게 화면이 켜지고 마우스가 클릭이 되는지 너무 신기했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 갈 수록 전자기기에서 가전제품으로 분해의 스펙트럼을 넓혀 궁금한 것을 절대 못참는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중학생 때 나의 놀이터는 고물상이었다. 처음보는 기계들이 보이면 무작정 분해하느라 정신없다가 선물로 받은 mp3도 분해했다가 조립을 못해서 혼나기도 했었다.
고등학생 때 문학 선생님은 고대 국문과를 나오신 아나운서 출신이셨다. 고등학생 시절 문학을 공부하면서 어려웠던 것은 화자가 무엇을 말하려는가 빨리 찾는 것이 어려웠다. 차라리 비문학은 내가 이해하기 쉬운 영역이었으나 특히 고전문학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공부하는 시간이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투자해야만 책을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나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이 이 부분을 왜 이해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이해하시지 못하셨다. 이후 많은 시간이 지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자리에 있으면서 내가 이해 하고 있는 범위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데 왜 이해를 못하는지 나도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간단한 연산 문제임에도 어려워하는 것이 굉장히 미안하면서도 어이가 없으면서 많은 감정이 생겼다.
기계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다면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고, 운동을 좋아하는 학생이 있다면 마음을 나누는 학생도 있다. 각자 개인의 모습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사회는 지역을 이루고 국가를 이룬다. 조화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영역의 스펙트럼을 더 확장시켜갔으면 좋겠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지만 그 중에 제일은 인품이 정말 뛰어난 사람으로 성장하기 위해 공부를 할 때 정말 힘들기도 하고, 어려워서 고뇌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공부와 싸우기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을 경험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무엇이 필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대학에서 기초과학 과목과 학과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마다 속에서 불이 난다. 이공계, 자연계 공부는 특별히 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것은 맞지만 학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분야의 관심있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나는 이것에 너무 동의가 생기지 않고 너무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이공계와 자연계 과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시대와 세대들의 때에 맞는 기술의 발전과 사회와 국가의 움직임을 위해서는 감정이 앞서는 미래 준비와 걱정보다 이성적으로 이공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2] 얘들아 나는 너희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하면 좋겠어.
학생이었을 때는 너무 돈이 없어서 질보다는 무조건 양이 우선이었다. 무조건 많이 먹고, 오래 먹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 바빴다. 시간이 지나서 돈이 좀 모이고 맛있는 곳들을 많이 다녀보니까 양보다는 질이었다. 배 터질듯 먹지 않아도 적당히 먹는데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만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 맞다. 정말 맛있는걸 먹어본 사람이 어떤 곳에 가더라도 가게 분위기, 간판, 서비스를 보면 한번에 맛집을 알아본다. 다만 돈 걱정은 똑같을 수 있지만 마음을 잡고 맛있는걸 먹겠다는 사람은 어딜가나 맛집을 잘 찾을 수 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부족하게 공부했던 생명과학의 분야를 대학교 가서 대부분 채울 수 있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대학교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쓰러질듯 너무 죽을 것 같았지만 내가 원했던 공부를 깊게 공부하니까 너무 재미있었다. 대학에서 전공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던 개인적인 일이 있었기 때문에 각 분야의 여러 공부들도 열심히 했었다. 기계공학, 물리, 역학, 경영, 재무관리, 부동산, 심리, 식품경영, 식품공학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나 자신을 더 큰 그릇으로 만들고 있었다. 단순히 내가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함이 아닌 많은 사람들과 의견들을 한 곳으로 모아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함이었다.
나보다 더 창의적이고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진 학생이 있다면 더 이야기 해보라고 말한다. 당연히 내가 이룬 경험들도 많이 있지만 그 학생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 나는 나의 방법론을 절대 알려주지 않고 끝까지 듣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낙서를 하는 어린 친구들을 무작정 혼내기 보다 칠판에만 낙서를 해보자고 약속을 하고 그림을 지칠 때까지 그릴 수 있도록 지도한다. 낙서를 열심히 하던 친구가 판서를 써내리면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교수자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3] For the Next generation, By the Next generation, Of the Next generation
나는 명예욕이 정말 강했다. 나의 아이디어들이 많은 곳에서 좋은 영향력을 가졌을 때가 많아서 나도 모르게 교만해지는 순간들이 정말 많았다. 어떠한 게임에서 초등학생에게 이를 악 물고 이기려는 어른이 바로 나였다. 승부욕이 강했던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전혀 생각할줄 몰랐고, 나만 생각하는 어른이 바로 나였다. 하지만 아이들의 삶 속에서 스토리가 없는 아이들이 없겠지만 수년간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듣는데 나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아왔던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삶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목적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전혀 감사할줄 몰랐고 22살 1년간 해외에서 고생을 해서 돌아오니 그제야 감사가 조금씩 보이면서 23살 군대를 다녀와 25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작은 것에도 감사할줄 아는 작은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왜 시간이 지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을까? 왜 시간이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을까? 정말 많은 후회 속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시기가 있었다. 내가 가장 비참하고 밑바닥에 있었을 때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느낀 것이 있다. 사랑은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비참한 곳에서, 가장 밑바닥인 곳에서 나를 건져내는 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나는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빠져들어 오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고, 내가 많은 사람들을 건져내 줄 수 있는 넓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열심히 공부 중이다.
[4] My generation
지금은 교회 전도사로 한 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항상 꿈을 꾸며 미래를 그려본다.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의 기둥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아이들이 어려워하고 있는 감정 싸움, 생활, 관계 등 많은 어려운 무게들을 내가 같이 버텨주고 싶다. 가장 큰 성품을 잘 만들어가기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전도사는 목사를 준비하는 사람이기도 하면서 각 영역에서 무게를 버텨주어야 한다. 그 무게 버팀을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다. 절대 내 인생과 시간이 사라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의 가치를 나의 다음 세대에게 찾았기 때문에 나는 그 무게를 계속 버틸 수 있는 기초가 되어주어야 한다.
나와 같은 나의 세대들이 이 무게를 버티는 일에 즐거웠으면 좋겠다. 당연히 어려운 인생살이이지만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마음을 버리고 우리 대한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로 중요한 기로에 있는 지금 2025년 나의 또래들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내 인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아이들을 위함임을 깨닫고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기면 새로운 무게를 버텨야겠지만 그때는 교사가 아닌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새로운 무게를 버티기 위해 지금 인생 무게를 배우는 듯 하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살아서 하나님 보시기 부끄럽지 않은 인생 살았노라 말하고 싶다. 편한 인생, 안정적인 인생이 아닌 가슴 뜨거워지는 인생을 살아가고 땅만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닌 눈을 들어 하늘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ps.
I' m committed to thinking freely
about how to improve our world.
J. Robert Oppenhei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