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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Nov 27. 2023

#4. 나 밴쿠버 좋아하나?


오랜만에 오는 밴쿠버.

밖을 나갈 수 없었던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3년만에 나가는 벤쿠버 비행이다.

당시엔 룸메이트 언니와 스테이가 겹쳐 함께 딥코브에 다녀왔다.

딥코브는 노스밴쿠버의 오른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하이킹과 허니도넛이 유명하다.

특히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허니도넛을 먹기위해 개인 헬기를 타고 온다는 이야기가 퍼지며

허니도넛집은 딥코브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이번에는 혼자라도 가볼까 했는데

지도를 보다보니 아직 안 가본곳이 꽤 많았다.

3일간의 풀데이동안에 하필 단 하루만 해가 쨍쨍한 탓에 계획을 잘 세워야 했다.

이리 저리 동선을 짜보며 주어진 3일을 어떻게 보낼지 열심히 고민해보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시차.

미주 비행을 가면 결국 시차때문에 둘쨋날부터 정신을 못차린다.

그래서 크루들도 홍콩 시차에 맞추어 생활하는 사람 vs 현지 시간을 따라가려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점차 잠을 못이기고 홍콩 시차를 따라가는 부류가 되었고

그말은 즉슨, 이번 스테이도 둘쨋날부터는 밴쿠버의 밤낮과 정확히 뒤바뀐 생활을 할게 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첫날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저녁 늦게 호텔에 들어와 세시간 정도 자고 나니 새벽 다섯시.

화창한 날이 오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다시 잠들기가 아까워 아침일찍 나가기로 했다.


8시쯤 나와서 곧장 그린빌 아일랜드로 향했다.

해상 교통수단인 아쿠아 버스를 처음 타봤는데 생각보다 운치있었다.

마침 내가 탄 아쿠아 버스는 바로 다음정거장에서 커플이 내리고나니 선장님?과 나 혼자만 남았다.

날씨도 생각보다 너무 따뜻해서 목폴라를 입고 온 내 옷차림이 무안해 질 지경이었다.

그렇게 10분정도 아쿠아 버스를 타고 그린빌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그린빌 아일랜드는 생각보다 작았다. 퍼블릭 마켓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들을 팔고 있었고 간간히 소품과 악세사리를 파는 상점들이 보였다.

10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지만 유명한 도넛가게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크게 기대하진 말라는 한국인 후기들이 보였지만 그래도 온김에 도넛과 라떼를 먹으려고 나도 줄서기에 동참했다. 줄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후기가 괜찮아 보이는 근처 카페도 하나 찾아냈다. 바다를 바라보는 벤치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곧장 가게 바로 앞 텅 비어있는 벤치에 앉았다. 사람 많은 곳은 딱 질색이라.

그리고 한 입 베어문 도넛은 폭신한 식감이 눈을 휘둥그레 만들정도로 맛있었다. 도대체 기대하지 말라는 후기는 누가 남겼지? 혹시 기대치를 낮게 만들어 이렇게 기분좋게 만들어주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로 한입 마신 라떼역시 고소하면서도 독특한 커피 맛이 어우러져 도넛과 환상 궁합 그자체였다.



아, 그린빌 아일랜드에 오길 잘했다.

다음 행선지인 스탠리 공원으로 가는 길 내내 선선하게 부는 바람과 높은 고가도로, 크고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들이 펼쳐졌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꼭 쥐고 가는 길마다 사진을 찍었다.


스탠리 공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를 한번 갈아타야 했기 때문에 시내에 들러 엄마가 부탁한 립스틱도 하나 샀다. 점원은 매우 친절했지만 말이 너무 빠른탓에 그녀가 건네는 스몰톡의 80%는 대충 때려맞추기로 대답 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 대답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럴때면 나의 영어듣기도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탠리 공원은 너무 커서 보통 자전거를 타고 투어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나 역시 자전거를 빌릴까 했지만 숲속을 거닐다 꼬마기차를 타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일단 무작정 걷기로 했다.

호수쪽으로 조금 걷다가 이내 방향을 돌려 숲속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윽고 커다란 나무들과 그 아래서 쉬는사람들이 보였다.

요근래 자주 갔던 호주에서도 이런 커다란 공원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참 좋았는데

벤쿠버 역시 건물만한 나무들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커다란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웅장해지곤 한다. 과연 저 나무들은 몇십년을 살았을까 가늠도 채 되지 않기에.

그렇게 조금 걸어가다 벤치에 앉아 멍을 때렸다.

풍경이 너무 예뻐서 바라만 보는 시간이 좋았던 것도 있고, 너무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침대에 누우면 잠들것 같은 기분에 몽롱한 상태로 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좋다..좋은데..그냥 좋다가 다인가?

이렇게 예쁜 풍경을 보며 쉬고 있지만 나는 정말 이 순간을 좋아하고 있는 걸까?

피곤해서 눈이 감기기 직전인 몸을 이끌고, 그래도 벤쿠버까지 왔는데 호텔방에만 있을 순 없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다니고 있는 내자신에게 진정으로 묻고싶었다.

지금 행복한가 나? 

어쩌면 나는 혼자 행복하면 안된다는 병이라도 걸린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순간마다 매번 나 자신에게 정말 행복한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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