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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미 Oct 29. 2023

#1. 파리가 설레지 않다니

나는 어느덧 6년차 승무원이지만 파리를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파리만 갔다 오면 이 직업도 더는 미련이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기다리던 세글자.

CDG(파리 샤를드골 공항 코드)가 나왔다.

 

승무원이라면 왠지 파리 에펠탑앞에서 찍은 사진 하나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겠어?


사실 유럽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파리는 낭만의 도시라 하지 않던가.

왠지 그곳은 갔다와야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딱 파리만! 다녀오고 그만두자 다짐했거늘.

 

그토록 가고 싶었던 파리가 바로 오늘, 이제 3시간 뒤면 브리핑 시간인데

왜이리 가기가 싫은건지...

14시간 20분이라고 뜨는 비행시간을 보니 숨이 턱턱 막혀온다.

그래도 마지막 파리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참고 준비를 했다.


브리핑 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우리 항공사는 매일 크루들이 바뀌기 때문에 일단 브리핑실에 들어서며 인사를 하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시작된다.

너무 발랄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가는 자칫 만만해보일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부러 딱딱하게 인사를 하고 말한마디 안 섞을 필요까지는 없지만

어쨌거나 만만해 보이는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는게 좋다.


브리핑 실에서 배정된 우리 갤리의 시니어는 친절한 타입은 아닌 듯 싶었다.

그렇다고 일을 미루는 스타일은 아닐 것 같고 딱 해야할 일만 해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첫번째 서비스가 무사히 끝나고 크루들은 반씩 나뉘어 벙커(승무원들이 잘 수 있는 침대)로 휴식을 취하러 들어갔다.

나는 두번째 레스트 팀이었고 마침 우리 갤리 시니어가 나와 함께였기 때문에 우리는 뒷갤리에 나란히 남겨졌다.

역시나 씨니어는 수다를 즐기는 타입이 아닌듯 보였고 간간히 말을 섞다가 각자 할일을 하곤 했다.

그렇게 별탈 없이 첫번째 레스트는 끝이 났다.


크루들이 다 조용한 편이었기 때문에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도 흥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막상 도착하니 살짝 설레이긴 했지만 다른 크루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파리에서 유니폼 입고 사진 찍을 기회가 흔치 않을텐데..참 나도 지독하게 눈치보는 성격이다.


파리는 시위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모든 크루가 시내에 나가지 않겠다고 했고

나는 마지막 파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서 우버를 타고 나가게 됬다. 왕복 교통비 70유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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