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니어 문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누구도 너의 동의 없이 너를 하찮게 만들 수 없다.

by 꿈꾸는라일리

비행을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그날도 여느 때처럼 브리핑실로 향했다.


승무원은 매 비행마다 크루들이 미리 모여 비행 일정과 특이사항을 공유한다.

그리고 보통 막내에겐 안전 규정 관련 질문이 쏟아진다.

이날의 사무장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소문난 블랙리스트 인물이었다.

공식 문서가 아닌, 크루들끼리 ‘조심해야 할 사람’을 공유하는 비공식 리스트.

그 이름이 오늘의 브리핑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브리핑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막내인 나에게 역시나 질문이 퍼부어졌다.

다행히 열심히 준비해 간 덕분에 대부분은 잘 대답했다고 생각하던 그때,


“음~ 그래. 근데 콧소리는 좀 빼지?”

아차…

이런 식의 공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근데 내가 콧소리를 냈나?’

당황한 나는 어버버 하며 멋쩍게 웃었고, 브리핑이 끝난 뒤 선배님들은 다가와 나를 토닥이며 말했다.

“상처받지 마~ 원래 저런 분이셔.”

“괜찮아, 누구나 다 겪어~”

그게 바로, 괴롭힘의 시작이었다.


비행 중 식사 서비스가 끝나고 면세품 딜리버리까지 마치고 나면 그제야 승무원들은 밥을 먹는다.

우리 회사는 ‘컴파트먼트’라 불리는 갤리 서랍을 의자처럼 내리고

갤리 뒷공간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밥을 먹는 문화가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하나둘씩 밀을 꺼내 준비하고 있던 중,

앞갤리에 있던 선배님이 다가와 말했다.

“막내, 앞으로 오라는데?”

같은 갤리에 있던 선배님들은 서로를 한 번 바라보더니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밥도 못 먹고 어떡해… 얼른 다녀와.”

앞갤리로 가니 사무장님이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밥은 먹었냐는 말도 없이, “따라와.”

짧은 말 한마디만 남기고 그는 성큼성큼 뒷갤리로 걸어갔다.

도착하자마자 그가 가리킨 것은 워터 밸브.

“공부는 많이 했겠지?”

“아, 네! 열심히 했습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던 나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열심히 해서는 안 돼~ 제대로 해야지. 이게 뭔지 알아?”

워터 밸브.. 훈련 때 전혀 들어본 적 없는 파트였다.

“음… 기내에 물을 조절하는 밸브입니다!”

“그걸 누가 몰라. 이거 어떻게 써야 되는데?”

순간, “저도 그건 모르겠습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 기내에서 물을 조절할 때요..?”

“야, 공부했다며. 이런 것도 안 배우고 뭐 한 거야?”

“죄송합니다! 공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던 펜과 작은 메모패드를 꺼내 들자

“메모? 야 너는 머리가 나빠? 메모할 생각 말고 외우라고.”

“아 네.. 죄송합니다.”


그 뒤로도 그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물었고,

나는 대부분 대답하지 못한 채 계속 혼이 나야 했다.

물론, 그가 어리바리한 막내 승무원을 ‘교육’하려고 한 것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8시간이 넘는 비행에서 밥 한 끼 못 먹고, 필기하는 것조차 “머리 나쁘다”는 말로 무시당하며 그렇게 교육을 시켜야만 했을까?

그땐 그게 그냥 당연한 줄 알았다.

이 정도는 그저 흔한 일.


이것보다 수위 높은 괴롭힘도 물론 많다.

어리바리한 신입 승무원과 짝이 되면 일하기 전부터 대놓고 싫은 티를 내던 선배들,

밀서비스 중에 부족한 음료를 채우러 갤리에 들어갔지만 찾지 못해 물어보면 손님들 앞에서 버럭 화를 내거나, 밥 먹을 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잘못한 걸 다시 생각해 보라는 사람까지.. 그게 그 시절의 승무원 문화였다.


지금은 물론 많이 나아졌고, 좋은 선배님들도 많다는 걸 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경험도 내가 국내 항공사를 떠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것.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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