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폭풍 속에 서 있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다시 돛을 조정했다.
내가 다녔던 항공사의 트레이닝은 빡세기로로 유명했다.
약 12주 동안 안전과 서비스 교육을 받게 되는데, 내가 입사했을 당시엔
A330, A321, A320, A350, A380, B777, B747...
무려 7종류의 항공기 기종 교육을 받아야 했다.
보통 단일기종 항공사는 1~2개 기종 교육만 받지만,
우리 회사는 복잡한 사정으로 운용하는 기체 종류가 다양했다.
거기다 안전 훈련은 또 어찌나 빡세던지, 흡사 군대를 방불케 하는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자칫 미소라도 보였다가는 교관님께 불려 가 한 소리를 듣곤 했었다.
디칭 훈련이라고 불리는 기체가 바다에 착륙했을 때를 대비한 훈련은,
직접 다이빙을 해서 승객 역할을 하는 동기를 100m 이상 끌고 헤엄쳐야 한다.
이때 승객은 절대 도와줘선 안 된다.
발장구 한 번이라도 쳐주었다가는 교관님에게 걸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비상탈출 구호를 외칠 때는 데시벨 측정기까지 동원된다. 기준치를 넘지 못하면 그대로 탈락이다.
( 안전 훈련은 매년 다시 통과해야 승무원 자격이 유지된다. 그러니 모든 승무원들은 그대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 외에도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장비 이름 O2 bottle, Hafex 등 기내에 실리는 장비 사용법, 각종 기내 용어들, 일본어, 중국어로 이어지는 서비스 멘트까지...
12주 동안 어찌나 고생을 많이 하는지 마지막 날에는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12주 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드디어 첫 비행.
첫 비행은 엄밀히 따지면 관찰비행이다.
짧은 단거리 턴어라운드에 동승하게 되었고,ㅡ나는 설렘 반, 긴장 반으로 비행을 준비했다.
전날엔 친구들과 파티도 살짝 하고, 마음가짐도 단단히 다졌다.
그렇게 비행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식사 서비스까지 마친 후,
선배님이 기내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던 그 순간.
우웁.
갑자기 구토감이 확 몰려왔다.
‘너무 긴장해서 체한 건가…?’
일단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가 먹은 걸 죄다 쏟아냈다.
하지만, 한 번 토했는데도 속이 나아지질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실 선배님이 떠올라 급히 입만 헹구고, 다시 갤리로 돌아갔다.
“긴장해서 체한 것 같아요…”
그렇게 둘러댔지만, 20분쯤 지나고 나니 다시…
“선배님… 죄송한데… 저 화장실 좀…!”
화장실을 몇 번을 갔는지 기억조차 않을 지경으로
모두 게워내고 나니 정신이 혼미했다.
그러자 이코노미 갤리에 계시던 선배님이 나를 부르더니 말했다,
“혹시… 비행이 안 맞는 체질 아닐까? 예전에 그런 후배 있었거든. 비행기만 타면 토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진짠가? 나… 진짜 비행 안 맞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내가 비행기 몇 번이나 탔는데!
이렇게 힘들게 교육까지 마쳤는데 비행이 안 맞는 체질이라고??’
그렇게 절망적인 생각을 부여잡고 있다 보니, 첫 번째 비행이 끝났다.
돌아오는 인바운드 비행에선 아예 서 있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빈 승객 좌석에 앉아 담요를 어깨까지 뒤집어쓰고 앉아있는데 문득,
‘이대로 정신 잃으면 어떡하지… 기내에 의사도 없으면… 나 진짜 이대로 죽는 건가…’ 하는 걱정이 스쳐 가며 트레이닝 때 배웠던 FAK(First Aid Kit)가 생각났다.
선배님이 다가와 괜찮냐고 묻는 말에 곧바로
"혹시…. FAK를 뜯을 수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맙소사. 그때는 정말 걱정돼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말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질문을 들은 그 승무원도 참 아찔했을 것이다.
First Aid Kit은 정말로 기내에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약들이 들어있는 구급상자 같은 거다. 하지만 이걸 뜯으려면 일단 사무장이 허락을 해야 하고, 필요하다면 위성 전화를 이용해 의료팀에 연결하여 절차에 맞게 사용하고 이후에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절대 쉽게 뜯는 물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 FAK를 수습비행 온 승무원이 뜯자고 하다니 ㅋㅋㅋㅋ
선배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해했고 나는 그 즉시 괜찮을 것 같다며 담요를 더 올려 썼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이윽고 “승객 여러분, 우리 비행기는 서울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멈출 때까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는 랜딩 방송이 들려왔고 나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
띠링.
“나 노로바이러스 걸린 것 같다는데 너 괜찮아?”
전날 나랑 같이 회를 먹었던 친구한테 온 문자였다.
아…
그 회가 문제였구나.
하필…
첫. 비. 행. 날. 식. 중. 독.
비행체질은 문제없었다는 사실에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배가…
쿡쿡…
아직도 너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