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퇴사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아니요’라고 말해도 괜찮아.

by 꿈꾸는라일리

시니어 문화가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생각보다 부족하다고 느껴졌던 취항지, 잠만 자고 나면 나면 돌아가야 했던 짧은 레이오버 시간, 개인적으로 힘든 일까지 겹치면서 내 정신은 서서히 망가져갔다.


장거리 비행에서 돌아오면 뒤바뀐 밤낮과 지속된 피로도로 머리만 대면 곯아떨어지곤 했지만 그마저도 눈만 잠깐 붙이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 쉬는 날 다른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정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승무원들은 보통 장거리 비행을 다녀오면 3일 정도 day off가 주어진다.

짧은 비행이라면 하루에서 이틀.


오프에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나가거나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PD님을 따라 일을 돕기도 했다.

한 번은 장거리 비행에서 돌아오자마자 PD님을 따라 부산에 출장을 간 적도 있었다.

가는 내내 졸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래도 부산에 도착해서 바닷바람 냄새가 코로 슈육 하고 들어왔을 때

마치 비행으로 찌든 내 몸을 바람이 시원하게 정화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행사 준비를 하고 몸을 움직이는 일은 나에게는 활력이 되었다.


내 직업이 승무원이 맞나..?


분명 일할 때 즐거운 건 이쪽이 맞았다.

물론 아르바이트로 따라 간 일이었기에 그만큼 책임감도 적어서

마냥 즐겁기만 했던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집안일까지 더해져 나의 스트레스는 정점을 찍었다.

아웃포트 호텔에 도착해서 혼자 있는 순간이 유일한 휴식이었지만

그마저도 같은 비행에 2년 차 신입들이 있다면 방을 같이 써야 했기에 혼자 있는 시간은 극도로 적었다.

다행히도 같이 방을 썼던 선배님들은 대부분 친절했지만 어쨌거나 나는 막내이기 때문에

침대 위치를 선정하는 것도, 샤워 순서를 정하는 것도, 심지어는 자기 전 불을 끄는 순간까지도 물어보고 결정해야 될 노릇이었다. 지금도 2인 1실을 사용하는 항공사가 꽤 많은 것으로 안다.

아무리 비용 절감이 목적이라지만 이 시간을 진정한 휴무시간으로 보는 것이 맞는지 묻고 싶다.


시간이 지나도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내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가, 나의 회사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등 뒤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평소대로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고 있는데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듯, 뒤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은 점점 심해져서 나중에는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계단을 못 오를 지경에 이르렀다.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 그때는 너무나도 무섭고 힘겨웠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함께 일했던 PD 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비행기에서 도망쳤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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