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싶어서

by 유영

말은 허공에서 지워진다

깃털은 바람의 잉크를 훔쳐 달아나고

깨진 유리조각만 피부에 지도를 남긴다

허공에 적힌 글자는 비가 되어 흩어진다

가벼운 말은 빗물 되어

박힌 유리를 더 깊게 스칠 뿐


이륙한 말은 돌아오지 않으니

손목 위에 활주로를 깔아

수정펜을 제동등 삼아

한 줄씩 불꽃을 문질러 억지로 멈춰 세운다


우주는 멈추지 않는다

쓰레기든 별이든 터지면 터지는대로

비닐봉지 속 산소에 든 숨 막히는 보관

머릿속 치어들이 들썩이면

기록은 그 봉지를 물로 찢어

숨을 바깥으로 풀어놓는다


식어버린 유리의 체온

사라진 기억의 입김

포크로 별자리를 긋는다

그 틈으로 바뀐 빛의 각도


정오에 떠 있는 흰 접시

나는 단어들을 올리고

누군가는 포크로 별을 찍어 나눠 먹는다


어느 날엔 환승역

낮의 눈에서 밤의 손으로

갈아타겠지


그래서 거창할 것 없는 이야기

다만 부력을 품은 이야기

물에 뜨는 병 속 쪽지처럼

어느 해안에선가 발견될 몇 줄

그때서야 착륙을 끝내고

다시 누군가의 출발선이 되겠지


기록은 기억의 다른 얼굴

기억하기 위해

기억하지 않기 위해

자유롭기 위해


어딘가에 나를 묻고 싶어서,

누군가에 나를 묻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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