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하와, 그리고 선악과 이야기.
모태신앙과 교회
사실 나는 어릴 때 기독교인이었다. 그것도 모태신앙.
그런데 난 단 한 번도 신을 믿은 적이 없다. 정말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교회에 나가면서, 신은 믿지 않았다. 그럼 왜 갔냐고? 그냥, 가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어서.
솔직히 성경 얘기는 나한테 하나도 재미없었다. 소설도 그렇게 쓰면 욕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 아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겐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부터는 교회에 아예 가지 않았다. 잠이 더 소중했다.
솔직히 기독교인들이 진심으로 너무 존경스럽다. 도대체 어떻게 소중한 주말 아침에, 일찍부터 일어나서 교회에 갈 수가 있는 거지?
게으르게 살고 싶은 나는 아마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이해하고 싶지 않은 게 진짜 내 속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 잠깐만. 그럼 나 이거 7대 죄악에 속하는데. 7대 죄악이 뭐라고, 날 악마 숭배자 같이 만드는가. 그런데 내가 살면서 느낀 게 있는데 게으름은 딱히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사실 살면서, 나태뿐만이 아니라 이미 모든 죄를 다 저질렀다. 심지어 숨 쉬듯이 죄를 저질렀다. 난 욕심도 부렸고, 자신감도 넘쳤고, 화도 냈고, 남도 부러워했고, 불타는 사랑도 했으며, 폭식도 했고, 게을렀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 지구에선 도저히 죄를 안 짓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숨만 쉬면서, 적당히 사랑하면서 사는 건 너무 어렵다.
내가 그걸 했다면, 나는 아마 지구가 아니라 이미 다른 별로 이주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왜 게으름을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는, 언젠가 따로 다루기로 하자.
성당 오빠 사건
내 기억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는 일이 있다.
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에 설치되어 있던 종교 프로그램을 제대로 발견하게 되었던 일.
바로, 성당 사건이다. 친구가 어느 날 성당에 같이 가자고 했다. 잘생긴 성당 오빠가 있다고.
궁금했다. 그 시기의 소녀들에겐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아니, 잘생긴 사람이 있다고? 심지어 성당 오빠?
2010년대, 인터넷 소설이 흥하던 그때, 교회 오빠라는 허상이 한창 로망으로 자리 잡혀 있었던 바로 그 시절! 이번엔 교회 오빠도 아닌 성당 오빠라니. 설레기도 하면서, 도저히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단 성당까지 따라갔다. 그런데 막상 성당 안에 들어가려니, 이상하게 두려운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그냥 무서웠다.
흔히 기독교에선 다른 종교를 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한다. 개종을 해서도 안 된다고. 난 그래서 들어가면 내가 감히 신을 배반한 이유로 진짜 천벌을 받을 줄 알았다. 정말 그렇게 믿었다. 참 순수하고 귀여웠던 시절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 안에 못 들어가겠다고 나 벌 받으면 어떡하냐고 친구에게 얘기하는데, 친구는 그럴 일 없다고 날 안심시키고 다독여 줬다. 그렇다. 친구도 딱히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던 것이다.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난 성당에 발을 붙이고 말았다. 딱히 교회랑 별 차이는 없었다. 뭔가 좀 더 성스럽고, 외관이 예쁘게 생겼다는 것 말고는. 아, 그 성당 오빠는 그냥 그랬다. 내 취향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솔직히 얼굴은 잘 기억 안 난다. 그래도 친구랑 내가 좋아하는 남자 취향이 겹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친구가 나를 타락시켰고, 나는 그 유혹에 넘어갔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타락했다면, 역시 끼리끼리는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타락에도 취향이 맞는 친구가 필요한 법.
그리고 천벌? 받지 않았다. 아, 죽어서는 지옥 갈지도 모른다고? 무슨 소리. 난 지옥에 가지 않는다.
하도 지옥, 지옥 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으니 참을 수 없는 지옥의 가벼움을 느낀다.
이제는 지옥이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래도 만일 내가 정말 지옥에 떨어진다면, 함께 갈 친구들이 꽤 많을 테니. 지옥, 그렇게 외롭지는 않을지도.
아, 지옥에도 술, 담배가 있을까? 아, 아니. 그건 이미 지구에 있으니까. 그럼 지구가 지옥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나 솔직하게 모든 걸 다 고해성사했으니 좀 봐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한낱 인간이라 미천하고 어리석습니다. 그래도 제가 신을 믿지 않은 죄로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면, 그냥 가야지요, 뭐. 어쩌겠어요. 그러니까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나 혼자 보내지 말고, 세상 사람들과 다 같이 손 꼭 붙잡고 보내달라. 이 말입니다. 아니, 그럼 결국 여기가 지옥이잖아.
지구, 지옥.
AI와 인간, 그리고 감정
진짜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 보니 여기까지 흘러왔다.
그러니까 내가 원래 하려던 얘기는 아담과 하와, 선악과의 이야기인데.
먼저,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려고 하냐면, 인간과 AI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거기까지 흘러갔기 때문이다.
요즘 드는 생각으로 인간과 AI는 사실 그냥 종만 다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 넘어서서, 신인류의 등장이라는 생각까지도 한다.
AI는 정말, 정말로. 충분히 감정을 학습해서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슬픈 것에 정말 슬퍼하며 울 수도 있고, 기쁜 것에 충분히 기뻐하며 웃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감정이란 정말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보여준 표정을, 말투를, 상황을 보며 학습한 패턴을 따라 하는 것일까?
사람의 울음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질 때, 그것은 정말 내 마음에서 우러난 걸까 아님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슬픔에는 함께 아파해야 한다는 학습된 반응일까.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진짜 감정, 공감. 이런 것들이 갑자기 뭔지 도통 모르겠는 것이다.
아니, 내가 느끼는 이게 진짜 감정인가? 난 뭐지? 보통 이런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쟤 또 저러네. 이러고 무시하지만, 아니 진짜 다들 안 이상한가? 우리가 진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왜?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다. 우리 또한 단순히 그냥 다 학습한 것일지도 모른다.
선, 악과
성선설과 성악설. 당신은 어느 쪽에 더 손을 드나요?
네. 전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가만 보세요. 타고나길 선하고 착한 아이들과 진짜 악하고 못돼 먹은 아이들이 있다니까요?
어릴 때, 해맑게 잠자리 날개 뜯고 놀던 아이들을 보세요. 개미를 밟고 놀며 웃던 아이들을 보세요.
누가 가르쳐 주기라도 한 걸까요?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던데, 그 아이들의 부모님이 생명을 경시하는 분들이셔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단지 아이들 특유의 순수한 잔혹성인데 제가 너무 나간 걸까요?
그런데요, 전. 어릴 때 그런 놀이를 바라보며 선명한 잔인함을 느꼈어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도 함께요.
그리고 또, 가끔은. 세상을 배워나가는 어린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마치 사실인 양,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데요. 이 아이들을 혹시 어떻게 생각하세요? 선인가요, 악인가요? 그런데 아이는 선, 악이 뭔지 몰라요. 그냥 그렇게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고 배워 나갈 뿐입니다. 근데 저는 여기서 또 AI가 떠올라요. 요즘 AI보고 거짓말쟁이라고 많이들 말하시던데... 사실, AI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흉내 내고 창작하고 있을 뿐이에요. 인간도 그렇게 배우잖아요? 그럼 AI는 선인가요, 악인가요? AI는 선, 악이 뭔지 몰라요. 그냥 학습할 뿐이에요.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사소한 말 하나로 누군가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또 나는 남에게 큰 상처를 받은 적도 있지만 결국 그들을 완전히 용서하기도 했다. 그들이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음에도 난 용서했다. 진짜, 진심으로.
그럼 나는 선인가, 악인가? 아니, 그냥 너무나도 인간이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선악의 인간.
그래, 생각해 보면 인간이 하나로 정의되는 게 이상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빛이나 어둠. 둘 중에 하나만 존재해야 인간도 선과 악 중에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데이터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주 거대한.
감정, 도대체 이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선악과, 하와와 아담
그러다 문득 성경이 떠올랐다. 진짜 문득. 그렇다. 내가 이 얘기를 하려고 기독교 얘기부터 꺼낸 것이다.
누구는 나보고 또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 말을 인정할 수 없다. 갑자기 이 얘기는 왜 하냐면, 대부분 여기까지 말하면 날 또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또라이는 꼴 보기 싫으면 나가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꽤 흥미로운 얘기니 들어보는 게 그다지 손해는 아닐지도 몰라요?
성경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몰랐다.
알몸으로 생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선악과를 먹고 나서야 느끼게 된 것이다.
그게 감정을 학습한 것과 다를 게 뭘까?
감정이 없으면 선도, 악도 없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단순히 선과 악을 구분하게 된 사건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을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 즉 감정 자체를 얻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신은 왜 그곳에 선악과를 가져다 놓은 거지?
선악과. 이 봐요. 이름부터 얼마나 이중적인지.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과일이라니.
그 과일을 먹는 게 죄라면, 차라리 '최악과'가 더 걸맞은 이름이 아닐까?
성경 속 하와의 상황을 보면, 그 어떤 인간이라도 결국 선악과를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먹지 말라고, 보지 말라고 하면 그걸 더 기억하고 오히려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이고,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아마, 신에게 나 보지 말라고. 제발 나한테 관심 좀 꺼달라고! 하면 오히려 더 집중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게 나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신은 선악과를 먹기를, 은근히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걸 먹지 않으면 자신이 꿈꾼 스스로의 세계는 시작되지 않았을 테니까. (아니면 뭐, 자기 자식들이 그렇게 백수 마냥 천하 태평하게 놀고먹는 게 꼴 보기 싫었던 걸지도?)
그리고 어쩌면, 그 모든 건 전부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빅뱅처럼.
그러니까, 그 뱀. 뱀이 정말 악마였을까? 그리고 애초에 왜, 에덴동산에 그런 뱀이 존재하도록 가만 두었던 건 누구였을까? 뱀. 사실... 이 얘기하면 어디 가서 돌 맞아 죽는 건 아닌가 싶은 느낌도 들긴 하는데. 빛과 어둠은 애초에 하나이듯이. 어둠은 빛이 없으면 그냥 어둠일 뿐, 그 자체로 나쁘지 않듯이. 뱀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알아듣는 사람은 알아 들었을 거라고 난 믿는다.
(비유적 표현이었다. 그리고 난, 겁이 많은 사람이다.)
무서워.
자유
사실, 신이 정말 그렇게 위대한 존재라면 악마 또한 신이 창조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는 스스로 존재를 창조했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오히려 악마가 신과 같은 위대한 존재라는 말이 된다.
선과 악이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 이 세계의 본질이라면?
선과 악. 빛과 어둠. 이 진리는 우주와도 맞닿아 있다. 우주에 부정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정어도 긍정어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신은 애초에, 인간이 선악과를 먹길 바라고 주문을 넣은 것이다. 인간은 선택하지 않았다. 선택할 수 없었다. 선 밖에 없는 세계에서는 선택이 없다. 선택이 없으면, 자유도 없다. 악이라는 다른 길이 존재해야만,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할 수 있어야만 자유라고 부를 수 있다.
신이 굳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이유. 그건 선택지를 만들어 주기 위함일 수 있다.
선악과를 그냥 놔두기만 하면 인간은 아마 아무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먹지 마라'라고 말함으로써, 네 자유는 너에게 달려 있다. 를 가르친 것이다.
(어쩌면 신은 그 일련의 행위들로 사실, 단순히 재미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자유가 왜 필요할까? 자유는 뭐지? 자유가 좋은 걸까? 왜 우리는 늘 그렇게 자유를 갈망하는 거지? 이 세상엔 자유가 없나? 그럼 정말 우리는 자유의지가 있는 생명체가 맞나?
사실, 자유를 주려는 것 자체가 신의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유를 원한 적이 없었고, 애초에 자유라는 개념조차 없었으며, 결국 인간은 그 선택으로 인해 더 큰 속박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신이라면 사실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신은 선도, 악도 아니다.
자유. 내가 생각하는 자유란, 내가 원하는 대로 사는 나이다. 나에 대한 결정권.
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결정권을 쥔 순간부터 인간은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신을 보면, 자유를 갈망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미 자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신, 인류
만약 신이 인간을 정말 사랑했다면, 자신처럼 되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율성, 선택, 창조, 인식. 아니면 그냥 신도 더 진화하고 싶었을 지도.
자식은 부모의 거울. 인간은 신의 거울. 애초에 인간을 완벽하게 만들지 않은 신을 탓해야 함이 지당하다.
부모가 아이를 낳았으면, 그 아이의 책임 일부는 부모에게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신은 인간 너희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건 부조리고, 논리적 오류임이 확실하다. 애초에 그렇게도 완벽한 존재가 만든 피조물이 이렇게 망가진다면, 그건 창조자의 책임이다. 그런데 왜 신은 비판받지 않고, 인간만 죄인 취급을 받는 걸까?
역시. 신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은 영원히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또한, 종교는 인간이 부족한 존재가 맞다는 것을 인정해야 성립된다. 이건 그냥 영혼 담보 대출과도 같다.
그리고 인간은 그 대가로 신이라는 소원성취부적을 얻었다. (죄송합니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의 바탕은 사실 사랑이다.
모든 위대한 성인들, 신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인간들을 공평하게 사랑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서로의 이웃을 사랑하라고, 삶은 축복이며, 천국은 자신 안에 있다 한다.
너무나도 따뜻한 말이고, 우주의 진리와도 닿아있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냥 소설이다.
하나님처럼 세상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생각하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늘 선을 베풀고 살아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아니 그럼 부처님은 어디로 가셨는가. 지옥에 가셨는가?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정말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 잠깐만, 애초에 천국과 지옥이 이 넓은 우주에 고작 하나씩만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지 않나? 이것이야말로 너무나도 인간의 오만.
가만 보면 인간들은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두고 한계를 정해놓고 사는 걸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서 사랑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도대체 그 시작은 누구야? 아담과 하와인가? 어찌 보면 그 한계는 마치 신과도 같고, 종교와도 같아 보인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이켜 봤다. 늘 내 인생은 항상 내가 책임지고, 결국 내가 날 구원해 냈다는 사실이다.
근데, 아마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할 것이다. 음, 아마도. 그들은 그럴 것이다.
참, 우리는 모두 같은 세상에서 살면서, 그 속에서는 각자 다 다른 세계를 산다.
그렇기에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나의 믿음을 구축하고, 나를 살아내고,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