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흩어짐의 미학
청춘의 아름다움은 낭만에 있다. 그리고 그 낭만은 젊음을 아낌없이 낭비할 때 가장 짙어진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절, 다시는 될 수 없는 나를 회상하며 진한 향수를 느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서툼과 무모함이 그립고, 불안과 설렘이 엉켜있던 그 감정마저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대개 그 순간에는 느끼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낭만이라 불리는 것들은 언제나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로부터 비롯된다. 알면서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면서 나는 그 쓸모에 집착했다. 저 작은 돌멩이 하나조차도 다 쓰임이 있어 태어난 거라고 말하니, 나 또한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 애써야 했다. 하지만 하나도 즐겁지 않다. 남이 매겨주는 나의 가치에 목매다는 삶은 그 점수의 높고 낮음을 떠나 시작부터 내 목을 조여 온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보다 더 살 가치가 있는 비싼 인간. 누군가 내 쓸모를 말해줘도 나는 나를 다 알지 못한 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채 남들이 정해주는 내 존재의 이유를 그저 수긍할 뿐이다. 그 안에서 내가 무엇으로 남기를 바라는지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는다. 그래서 타인이 정해준 나의 의미는 정작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공허함으로 가득 들어찬 허기진 뱃속을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크기만 커져갈 뿐, 속은 여전히 텅 비어있다. 나를 채우는 것은 나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하나같이 쓸모가 없다. 쓸데없는 일에 집중할 때,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에 열심히 매달릴 때, 청춘의 가벼움으로 불가능에 뛰어들 때. 아마도 내 청춘은 그 무모한 낭비 속에서 더욱 찬란히 빛났을 것이다.
1분 1초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것도 멋진 삶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숨 쉬는 것이 먼저다. 열심히 달려도 끝은 없고 또 다른 시작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는 이 세계를 단숨에 고칠 수 없다. 하지만 세계를 비추는 내 눈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다. 모든 기준은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러니 굳이 태어난 것들에 이유를 붙이려 애쓸 필요도 없다. 나뿐만이 아닌, 어쩌면 세상 모든 것에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유 없는 것들을 더 깊이 사랑하듯이. 그러니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사랑할 필요가 있다. 대체로 사랑해 온 모든 낭만은 무용과 낭비에서 시작되니까.
그리고 나의 낭만 또한, 아주 무용하고 사소한 낭비 속에 숨어 있다.
여행지의 엽서 모으기
가끔은 내게 꽃 선물하기
좋아하는 것에 애써 이유 붙이지 말고, 그냥 좋아하기
때로는 과하게 몰입하기, 가볍게 흘려보내기
그때그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붙잡기
언제든 아무 계획 없이 떠날 준비 하기
뭐든 너무 아까워하지 않기
차로 10분일 거리를 굳이 30분 동안 돌아 걸어가기
너무 앞만 보지 말고 가끔은 하늘 보며 멍 때리기
한여름 밤, 창문 열어 놓고 풀벌레 소리 듣기
적당히 오지랖 부리면서 살기
순간의 감정에 솔직하기
내 인생을 남이나 돈에 걸지 않기
혼자 떠나는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기
남기고 싶은 순간은 무엇으로든 남기기
봄이 되면 사라질 눈사람 만들기
흩날려 사라질 불꽃놀이를 마음에 담아두기
지키지 못할 약속이 될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진심으로 믿기
언젠가 끝이 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기
그래서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기
내게 있어 낭만은 살아가는 방식과도 같다. 어차피 붙잡을 수 없고, 흘러가 버리기 마련이고, 되돌릴 수 없다. 나도, 남도, 세계도. 유한하기에 더없이 소중하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다. 때로는 세상보다 내 안의 내가 더 지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편이 되어주는 단 한 사람, 나 자신이 필요하다. 내 세계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다. 그렇기에 남들의 눈에 비치는 나를 믿기보다 내 안의 나를 먼저 믿어야 한다. 남들의 위로보다 내가 내게 건네는 위로가 가장 먼저 닿아야 하고, 그러한 다정함을 갖기 위해서는 나의 낭만을 지킬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내 낭만이 소중한 만큼, 당신의 낭만도 소중하다. 사실, 당신이 하고 있는 모든 쓸모없는 일들은 헛되지 않다. 그것들이야말로 삶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당신만의 낭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왕 살아가는 거, 조금은 천천히, 낭만 있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