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세한 날갯짓으로
문은 늘 같은 자리에 서있었으나 그 앞에 선 나는 매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손잡이의 차가운 금속은 언제부턴가 계절의 성질을 품은 채 내 손목 가까이에서 숨을 쉬는 듯했다. 굳게 닫힌 표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그 너머의 풍경을 은근히 흘려보내는 얇은 막처럼 느껴졌다. 무언가 움직였다는 감각은 무뎌진지 오래였다. 다만,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같다고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오래된 종이의 결을 닮아 있었다. 메마른 멋없는 냄새. 쓰였다 지워진 자리들에서 무언가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향을 맡았다. 마음속에 남아 있던 낮은 울음을 끌어올리지도 잠재우지도 않은 채 두꺼운 돌처럼 나를 가만히 짓누르곤 했다. 체온보다는 조금 낮은 무게였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붙들기보다는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잊게 만드는 무거움이었다.
문을 열지 않을 결심은 살갗 위에 붙는 얇은 비닐처럼 매끄럽게 미끄러져 내려 나를 안심시켰다.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이미 나는 그 안에 머물고 있지 않은 것만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바깥은 나를 변화시킬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바스러진 예감들은 날이 서지 않은 칼처럼 방 한가운데에 놓인 채 빛을 반사하다가 그렇게 스스로 무뎌지곤 했다.
그런데도 문 너머가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닫힌 문이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빛은 늘 문틈 사이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로 보이는 색도 없고, 향도 없는 미세한 것들이 빛을 뒤로한 채 모습을 보인다. 의도적인 움직임이거나 외부의 공기가 내 안에서 저절로 번져 나가거나 하는 그런 경계 속에서도 여전히 움직였다는 감각은 오지 않았다. 다만 어제와 오늘이 완전히 같다고는 말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었다. 여전히 닫혀 있는 문 손잡이는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들려오는 기척은 상상인지, 기억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희미하게 스며들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이 문이 세계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물질이 나를 보호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기 시작했다. 그 확신은 내가 가진 아주 오래된 외투가 되어 쉽게 버리지 못했다.
여전히 안은 조용했다. 조용함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아무 소리도 없었다. 그제서야 나는 적막 속 내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바라볼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더 이상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았다.
문을 여는 일은 고작 손목의 각도를 바꾸는 정도의 움직임에 불과했다. 손목에 힘이 조금 들어가고, 문고리를 잡아 돌리면 바깥이 열린다는 단순한 구조 속에서 나는 늘 그 단순함이 인생을 바꿀 리 없다고 믿고 싶었다. 하루를 바꾸기에는 너무 작고, 인생을 흔들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일이라고. 믿고 싶다는 마음은 믿음보다 강한 잠금장치가 되어 문보다 더 견고하게 내 안을 닫아걸었다. 변화는 늘 낮은 먹구름처럼 천장 가까이 떠서는 내려오지도 않고 불안하게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나를 누르지 않는 것들이 가장 오랫동안 압박했다.
문 앞에 선 시간 동안에는 수없이 많은 장면을 꿈꾼다. 꿈을 그리고, 간절히 바란 것들이 있다. 모두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이 거짓된 말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절히 바라면 그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하지 않았던 것들은 전부 내 것이었다.
문이 열렸을 때 쏟아질 소음과 바닥의 감촉, 공기의 온도 같은 것들을 상상해 봤자 언제나 같은 결론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래서 두렵다기보다는 무력했다. 어둠은 내가 움직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더 깊숙한 곳으로 숨겨버린다. 잃어도 잃지 않고, 얻어도 얻지 않음과 같으니 완전한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 흐르고 있어도 나에게 닿는 순간 전부 멈춰버리는 그 안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익숙해지면 편안함과 안락함이 찾아온다. 그래서 빠져나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갈 수 없다.
그러나 문 너머의 장면을 떠올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방은 조금씩 크기를 달리했다. 벽이 넓어졌다기보다는 고정되어 있던 나의 위치가 어긋난 느낌이었다. 천장은 여전히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있었지만 내 시선은 이전보다 더 멀리 뻗어 나간 탓에 방이라는 단어가 담을 수 있는 의미가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내가 이곳에 어떻게 머무를지가 바뀌어 버렸다.
저 너머에는 도시가 있을 수도 있고, 숲이 있을 수도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장소가 아닌 이름이다. 문을 열었을 때의 나를 상상하는 일은 결국 스스로를 비난하게 된다. 바깥은 거칠 수 있다. 차갑거나 뜨거울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을 견뎌도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속에서도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문을 여는 행위 자체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를 바꾸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머문 시간 속에서 이미 바뀌어 버린 나의 눈동자이다.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만든 바닥이다. 바닥에 난 결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아주 조금 달라졌음을 느꼈다. 한 걸음도 되지 않고, 손바닥 한 뼘도 되지 않았기에 눈금으로 재면 우스울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우스울 정도로 작은 그 차이가 몸 전체의 균형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게도 위로가 되어주었다.
고정되어 있던 것의 아주 작은 어긋남. 나는 그 어긋남이 나비의 날갯짓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선명한 바람 대신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떨림은 공기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으나 계속해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했다.
나비는 길을 알고 날지 않는다. 길을 아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인간은 길을 알기 때문에 길을 잃는다. 나비는 길을 잃지 않는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 바람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도 모른 채 꽃을 향해 흐를 뿐이다. 그렇게 모른 채 흐르는 것들이 언젠가 큰 물줄기를 만들어 도시의 형태까지 바꾼다. 믿고 싶지 않았으나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두려움의 뿌리는 앎에 있고, 호기심은 그런 두려움을 잊게 만든다. 애초에 그런 감정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만든다. 문은 길을 열어둔다. 닫힌 문도 길을 연다. 그리고 나는 아직 밖을 모른다. 모른다는 사실이 간지러운 설렘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알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해 너무 일찍, 때로는 너무 과하게 앎을 가르친다. 그래서 정작 알아야 할 것들에는 의문을 가지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애써 문을 열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흐름 속에 스며들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내가 경험한 가장 작은 변화였으며, 아마도 이후의 모든 장면들은 이 미세한 날갯짓을 기억하지 못한 채 이어질 것이다.
선명하게 남는 변화는 없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고,
다른 공기를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