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色)의 밤
바람이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은 채 고여 있을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소리를 찾는다. 작은 기척 하나쯤은 이 방 어딘가에 묻어 있지 않을까 괜히 뒤적이게 된다. 침묵은 나를 먼저 비췄다. 그 시선에서 도망칠 구실을 찾으려면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내야만 했다.
그날 밤도 그러했다. 문을 닫은 방은 바깥과 단절된다. 시간은 존재하지만 등장하지 않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시계는 없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흐르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게 8시 45분이었던가. 그 초침 위에 발을 올려놓지 못하고 있었기에 내 시간은 늘 8시 45분이었다. 어둠은 제때 찾아왔고 창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다만 내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이 밤은 전혀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엇도 잘못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안하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정상이었다는 점에서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
고요와 평화는 서로를 대신해 불리며 자주 한데 묶여 쓰이지만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단어들인지도 모른다. 책상 모서리에 아슬하게 걸쳐 있는 컵과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이불의 주름, 살짝 열려 있는 옷장 틈 사이로 보이는 옷의 그림자까지 전부 내가 만든 것들이다. 내가 만졌던 것, 남겨둔 것, 그런 나의 흔적들. 눈앞에 보이는 이런 불안정의 상태가 나에게는 평화를 가져다준다. 방문 밖, 저 너머의 정돈된 세계는 고요를 가져다준다. 그래서 나는 5평 남짓한 이곳이 더 마음에 든다. 완벽하지 않다는 점에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초라한 가능성 속에서 이 방은 나와 닮아 있었다.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곳이 나를 가두고 잇는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를 숨겨두고 있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어차피 커튼을 열지 않아도 햇빛은 들어오기 마련이고,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소음은 복도를 타고 스며들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다른 말을 잃는다. 바깥에서 살아 움직이던 것들조차 이 안에 들어오는 순간 죽는다. 살아 있는 것은 어쩌면 나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혼자 있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다. 다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누군가 답을 일러줘도 결국 답이 없는 문제로 남는다. 애초에 답안지를 만들 의지조차 없었다.
평화는 그렇게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어디가 비었는지도 알 수 없으면서 비어 있음을 견디지 못했다. 외로움의 크기만큼 방은 조금씩 좁아졌다. 밖으로 나갈 이유를 상상하기보다는 이 안에 무엇을 더 채워 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쪽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문을 열면 늘어나는 건 선택지밖에 없다. 늘 실패의 가능성을 동반한 자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것. 원한 적 없는 자유가 과연 자유인가. 자유는 안전한 것인가. 이미 걸려 있는 자물쇠를 다시 한번 더 굳게 걸어 잠갔다. 밖은 안전하지 않다. 혹시 모를 틈이 생길까 봐, 그래서 문이 열릴까 봐, 그렇게 한참을 손잡이를 속에 꼭 쥔 채 스스로를 점점 더 깊숙이 접어 두었다.
고립과 단절은 다르다. 뭐가 됐든 이 상태에 만족하고 지내다가도 가끔씩은 누군가가 절실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머릿속으로 불러낸다. 곁에 있는 실체를 원한 적은 없다. 누군가 내 옆에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원한 것에 더 가깝다. 그것으로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자유를 피하기 위해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사랑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안에 미리 그려둔 이별을 끊임없이 반복재생하면서 불안으로 형태를 유지했다. 이 관계가 나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기대를 건 채, 실체 없는 것들에 마음을 매달았다. 되돌아보면, 나에게 가장 잔인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별이다. 고요를 고요로 두지 못한 채 언제 폭풍이 닥칠지를 계산하며 관계를 들여다본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 도착해 나를 덮쳐 삼켜버리기 전에 도망치거나 아니면 이미 삼켜진 것도 모른 채 기다리거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건 나면서, 나는 이 무(無)의 상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기대하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스스로 균열을 만들어내버리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낸 것들조차 이 여백을 채우지는 못했다. 사람은 떠나고, 다시금 고요가 돌아오면 이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여전히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온전히 원하지는 못하는 상태로.
조용해졌다. 멀어졌던 시계의 초침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시간은 일정한 박자로 흐르고 있었다. 기대했던 불행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답을 찾고 있다. 그동안 이 공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사건만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오고, 관계가 시작되고, 그러다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와야만 이 시간이 의미를 가질 거라 믿었다. 선명하면서도 창백한 기억들이 같은 순서로 반복되며 나를 설득했다. 시간이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무언가가 벌어져야 한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가장 불안한 상태로 만들면서. 공허와 결핍, 그 사이에 생긴 강박. 내가 결핍으로 만들었기에 긴 공백이 결핍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늘 채우지 않아도 될 공간에 나에게 필요 없는 것들로만 가득 채웠다.
초침은 여전히 움직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완전히 채워진 공간이라는 것은 없다. 사람도, 물건도. 비어 있는 줄 알았던 이 방은 비어 있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 안에 무언가를 억지로 채워 넣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적막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공허는 사라지지 않는다. 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계는 계속해서 같은 소리를 낸다. 이 방 안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 그리고 나는 그 소리와 함께 도망치지 않고 서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장면 밖을 떠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