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騷音)

: 인식 변주

by 유영

세상은 늘 이만큼의 소리를 품고 있었을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듣지 않은 채로 살아왔을까.


문을 연 적은 없었지만 방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번져 있었다. 소리는 바깥에서 밀려온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들이 제자리를 조금씩 벗어나며 생기는 흔들림에 가까웠다. 들이마시는 순간마다 느껴지는 숨은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전부 귀에 닿기 전부터 몸 안쪽에서 먼저 번지는 것을 느꼈다.

시계 초침이 벽을 긁는 소리, 전선 속에서 미약하게 웅웅 거리는 전류의 기척, 층 아래에서 물이 이동하는 소리, 멀리서 닫히는 문이 공기를 타고 늦게 도착하는 방식까지 이전에는 하나의 배경으로 겹쳐져 있던 것들이 이제는 각자의 파장을 가진 채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것들을 묶어 하나로 구분하려 하지 않았다. 구분하는 순간 소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이미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내가 서 있던 위치에서는 그 전부가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가끔은 내가 있는 곳에서 달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건물의 그림자에 가려서, 혹은 구름이 낮게 깔려 있어서. 하지만 밤은 늘 마냥 어둡지만은 않다. 달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었기에 어둠은 생각보다 외롭지 않다.

빛은 언제나 나를 비추고 있는다. 태양은 나를 드러내고, 달은 나에게로 돌아온다. 내게 닿았다가 다시 다른 곳에 닿아 내가 만난 적 없는 이들과 손을 맞잡게 해 준다. 우리 모두는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며 얼마나 아름답게 빛이 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믿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시야의 바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라는 것도, 너라는 것도, 이름이 붙기 전에는 그저 흐르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너무 오랫동안 이름과 정의로만 그것들을 붙들고 있었다. 틀을 내려놓는 순간 내 눈에 보인 것은 바뀐 세상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세상이었다. 내가 조금 늦게 도착해 버린.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거칠고, 부조리하고, 무례하고, 모순적이다. 한데 뒤섞여 울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잠들지 않는 도시.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고 싫지는 않다는 점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들은 늘 그런 것들 사이에 숨어 있다.

변한 것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듣지 않기로 선택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선택 없이 들려오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이전에 앞섰던 것은 의미였고, 다음에 소리가 따라왔다. 지금은 순서가 달라졌다. 파동은 머물지 않는다. 잡으려 하면 더 빠르게 흩어지고 외면하면 몸 어딘가에 잔상처럼 남는다. 그래서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소리가 지나가는 방향만을 느꼈다. 이것이 세상의 소리인지, 아니면 나에게서 새로 생겨난 울림인지. 그것을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모든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친절하지 않은 세계에서 나에게만 친절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는 일이다. 기대는 나를 위해 새로운 해석을 만들어 버린다.

이 모든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제 나는 완전히 고요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고요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파동을 품은 상태로 변해 있었고, 그 변화는 여전히 사건이라 부를 만큼 크지 않았지만, 그 정도의 어긋남이면 충분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계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만을 남긴 채로.



이전 23화미접(微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