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선이 바뀐 밤
세상은 애초에 단순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다시 숨을 고르고 나서야 받아들였다. 평온해 보이던 날들조차도 그 아래에는 언제나 여러 겹의 소리가 겹쳐 있었다. 서로를 밀어내지도, 끌어당기지도 못한 채 같은 공기를 나누며 불편하게 낮게 울고 있었다. 삶이 유난히 피곤하게 느껴질 때면 그 이유를 지나치게 많은 사건에서 찾곤 했지만, 돌이켜 보면 문제는 사태가 아니라 불편하다 느끼며 경직된 나 자신에 있었다. 복잡함을 견디지 못해 문제로 오해해 버리고, 질서를 사랑한다 말하면서 실은 통제 가능한 것들만을 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들이 나를 더 숨 가쁘게 만들고 있는 줄도 모르고.
혼잡한 거리 위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문득 아무것도 알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안고 걸음을 옮기는지,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쥐고 있는지에 대한 사정들은 어느새 내 시야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간다. 이름 붙이지 않은 것들이 스쳐 가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더 오래 눈에 남아 마음 한쪽에 눌어붙은 채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혼선, 겹쳐 울리는 소리들 사이에서 동시에 떠오르는 생각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감각. 다만, 그 길이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는 것에 있어 두려움을 느낀다. 우리는 자주 길을 잃는다. 잃고 나면 어디로 갈지 고민하기보다는 재빨리 다른 안정적인 궤도를 찾아 다시 소속되기를 원한다. 자유를 원하면서도, 원치 않는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간 길,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길. 그래서 정답처럼 보이는 길로 향하기를 바란다.
완성형인 길은 없다. 완성형이라고 느껴지는 길만 있을 뿐이다. 굳이 어디로 갈 필요도 없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면서도 불안해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많은 것들이 흥미로워진다. 가다가 길을 다시 잃어버릴 가능성마저도 기대가 된다. 모든 것을 애써 밀어내지 않는다. 색은 하나이기보다 여러 색이 겹쳐졌을 때가 더 아름답다. 무지개처럼.
예술, 이런 틈에서 나타나 스며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것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다수지만 애초에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완결이 나는 것들은 닫힌 채로 점점 잊혀가지만, 미완인 것들은 찝찝함을 품어서라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가슴 아픈 비극은 비수로 꽂힌 채 영원히 회자되는데, 사람은 왜 그리도 비극마저 탐하는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욕망은 행복뿐만이 아니었다.
흘러가면서 사라지고, 보는 것만으로 느끼고, 타인을 읽으면서 새로운 나를 읽어간다. 모든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가 느슨해지고,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흐릿해질수록 무언가를 느낄 필요 없는 공간 속에 나를 앉힌 채로 온전한 나를 느끼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그 안에서조차 정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사실 그 안에는 아무런 답도 들어 있지 않다.
취향, 어쩌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방식.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이라기보다, 무엇과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더 가까운 선택말이다. 그러다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장면의 범위가 조금씩 넓어져갈수록 삶도 가벼워진다. 복잡한 것을 복잡한 상태로 남겨두는 능력, 불완전함을 완성시키려 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덜어낸다. 단순함은 목표로 삼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애쓰지 않는 것에 있다. 여백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더 넓은 숨 쉴 공간을 얻었으니까.
산책, 목적지를 향해 걷는 것이 아니라 내 리듬을 찾아가는 것.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잊어버리는 순간들이 쌓일수록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흩어진다. 시간이 직선으로만 흐른다는 믿음은 이런 순간들 앞에서 풀어지고 만다. 걸음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마음은 이미 여러 시점을 동시에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같은 길을 여러 번 지나면서도 매번 다른 풍경과 마주치는 경험은 반복이 곧 지루함이라는 오랜 오해를 무너뜨린다. 변화의 크기가 작아도 괜찮다는 느낌은 이런 것들을 통해 나에게 온다. 어긋난 장면들이 겹쳐지면서 만들어내는 미묘한 차이들이 하루를 이루고, 돌아보면 어느새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유희, 현실을 밀어내지 않는 것. 고통을 지우지도, 불안을 미화하지도 않은 그 상태로 모든 것을 느끼며 숨을 쉴 수 있는 틈을 찾는 일. 지극히 사적인 삶 속에서 마주하는 이 하나 없는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휘둘리라는 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라는 말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같은 재미를 느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니까 같은 속도로, 같은 곳에 도착할 수 없다. 이곳은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공존하며 깨닫는 장이니까.
예술과 산책, 취향과 유희는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같은 쪽을 향해 있다. 사는 방식에 대한 선택이다. 정답을 향해 나아가기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정한 답이 아니기에 재미가 없다. 미완의 것들을 사랑하면서 언젠가 그것을 나만의 결말로 새롭게 만들어내겠다는 기분 좋은 기대감 같은 것들이 삶의 색깔을 더해준다. 그래서 이 모든 혼란을 잠재우려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모든 기준이 유연해지고 나면 혼돈은 위험이 아니라 놀이의 조건이 된다. 이해해야 돼. 아니, 그렇지 않아도 돼. 이해하지 않을 마음을 먹고 나면 오히려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의미를 갖는 것들, 의미를 가지지 않는 것들, 붙인 의미가 다시 지워진 것들. 이 중 의미를 가지지 않은 것이 가장 자유롭다.
삶은 여전히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웃을 수 있고, 아직 모른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혼돈은 빨리 치워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노는 무대이다.
복잡하게 생겨 먹은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려 애쓰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단순하게 느껴진다. 함께 걷다가 엇갈리고, 그러다 다시 스치듯 만나며, 또 어느 순간 멀어져 있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삶은 하나의 장르로 정리되지 않는다. 이미 이 자체로 충분한 이야기이다. 이처럼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면 많은 것들이 이전보다 덜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끝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시작을 서두르지 않고, 시작이 있음을 믿기에 끝을 비극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로도, 이미 다음 장면으로 자리를 옮겨 가고 있었다. 돌고 도는 궤도 위의 어딘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