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의 회신
누군가 나를 부를 때면 나에게 닿기 전 그 짧은 멈춤 속에서 마음이 출렁인다. 나의 이름이 궤도를 돌아 다시 내게 닿았다는 것은 단순한 소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가 나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누군가가 나였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편지를 지나간 감정의 잔흔으로 기억한다. 시간이 지나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번진 잉크를 보면 괜스레 울컥해질 때가 있다. 그 안에 담긴 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잊었다고 믿었던 숨이 다시 목 안을 스친다. 잘 살고 있는지 묻지도 않았으면서 어느새 변해버린 내 모습을 먼저 발견하게 되고, 그 사이에서 사라진 것들과 새로 생긴 것들이 겹쳐 보인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갈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문장 사이에 남아 있었다. 시간이 접힌 것만 같다. 그래서 편지는 시간을 이어주는 매듭이다. 다른 시간의 나에게 닿기 위해 일부러 남겨둔 얇은 끈 같은 것. 나를 낯설게 여기는 날에 다시 펼쳐질 것을 알고 오늘을 접어 두는 마음. 그저 막연한 믿음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나를 쉽게 놓아버리지는 않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진 다짐에 가까웠다.
가끔은 내 안에서 먼저 불씨가 켜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알아차릴 때가 있다.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가던 날에도 마음이 무심코 문장을 만들고, 스쳐 지나가던 장면 하나가 기록의 형태로 정리되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에는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그냥 흘러가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놓치면 그대로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불안한 예감은 늘 들어맞기 때문이다. 사라짐은 빠르고 남은 것의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런데도 나는 자꾸 외로울 것들을 늘려간다. 대단한 것을 꿈꾸어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쉽고, 허무하게 지워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게서조차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다. 남김은 욕심이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나를 놓치지 않으려면 아주 작은 무언가라도 남겨야 했다.
수신과 발신, 그 사이를 오가며 나는 매번 다른 얼굴로 나를 다시 만난다. 쓰는 순간이 흘러가는 방향이라면 읽는 순간은 되돌아오는 기적에 가깝다. 사람들은 기록을 과거를 묶어두는 일이라 여기지만, 내게 있어 그것은 오히려 흘려보내는 일에 더 가까웠다. 붙잡지 않기 위해 적는다. 놓쳐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기 위해 남긴다. 그래서 잊히는 것이 무섭지 않도록.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렇게 남겨둔 문장들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날이면 은근한 떨림이 오른다. 아, 그때의 나는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어떤 말들은 바로 읽히지 않는다. 때로는 내게서 나온 말조차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의 내가 아직 그 말의 수신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이해는 늦게 오고, 의미는 그보다 더 더디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빠르게, 즉시, 바로 눈앞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버티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는 이 늦음을 껴안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애초에 느리기 위해 태어난 우리가 빛보다 앞서가려 할 때, 눈앞의 찬란함에 시야를 빼앗겨 타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달려버리기도 한다. 별이 제 몸을 태워 빛을 낼 때 연료를 서두르면 잠깐은 환해질지 몰라도 그 뒤에 오는 밤은 더 깊은 어둠일 뿐이다. 멀리 가는 듯해 보였지만 남은 것은 재와 궤적뿐이었음을 마주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의미를 그리는 인간이 사는 동안 앞질러야 할 대상만을 찾는다면 그 여정은 결국 자신을 태워 만든 짧은 섬광에 불과하지 않을까. 결국 남는 것은 선택뿐이다. 그 불꽃이 과연 내 의지였는지를 아직도 묻고 있다면, 어쩌면 망설임이 이미 답일지도 모른다.
빛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매번 더 밝게 빛나는 것들을 손에 쥐고서 오래 낡은 것들은 과감히 손에서 놓아버린다. 끝에 가서는 내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무엇을 정말 간절히 원했는지도 잊어버린다. 빛은 늘 그렇게 눈부심을 무기로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든다.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구원은 신의 거창한 선물이 아니다. 흔히 사랑은 타인에게서 받거나 타인에게 주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나에게 주는 것이다. 나에게 받는 것이다. 내가 나를 건져 올리는 순간이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기적이라 부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간 신의 계시라 믿은 한 줄기 빛은 아주 오래 전의 나였고, 아직 오지 않은 나였다. 손때 묻은 기억 한 조각이 다시 읽히기 시작한 날, 나는 완전히 혼자였던 적은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삶이 수없이 흘려보낸 발신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은 타인에게 닿지 못한 채로 내 안에서 끝이 난다. 그래도 가끔씩은, 언젠가의 나를 건져 올리기 위해 별을 띄운다.
재회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모여 같은 숨을 고르는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마 시간이 같은 방 안에서 지나간 나와 오지 않은 나를 마주한다면 흘러간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직선이 아니었다는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서로 다른 곳으로 멀어진 줄 알았던 조각들이 전부 둥글게 이어져 있었다는 것을. 애초에 한 번의 나만으로는 이 세계를 견디지 못한다. 여러 번의 나로 나뉘어 서로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밤의 어둠은 언제나 화려하고도 아름답다. 많은 것들을 삼키면서도 끝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낮에 보이지 않던 편지는 늘 이 시간에 도착했다. 순수한 욕망과 더러운 욕망, 가진 모든 게 미화되어 본래의 모습이 어땠는지도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의 이름 모를 것들까지 전부 선명해진다. 나에게 보다 솔직해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그 밤마다 자주 나에게 편지를 보내곤 했다.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을 만큼 쓸모없어 보이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언젠가 그 별빛 하나가 어둠을 건너 나를 다시 불러낼지 모른다.
그러니 오늘 띄운 이 별 하나도 언젠가 다시 마주하겠지.